상춘에티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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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벚꽃이 피면 많은 시민이 와서 쉬어가도록 기다렸고 쉬기에 편리하도록 시설도 확장해 보았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짐승도 새로 사 들였다.
요즘 꽃이 피기 시작해서 많은 시민이 찾아들어 온다. 우리는 시민들을 정성껏 즐겁게 모시고 싶다. 그러나 관람객 여러분의 상춘에티케트에 가끔 실망한다. 13만여의 인파가 지나간 지난 일요일 창경원은 쓰레기에 파 묻혔다. 80여명의 청소부가 구석구석에서 쓸어낸 쓰레기는 20트럭분이나 되었다.
바람에 날리는 휴지조각, 함부로 나뒹구는 소줏병-누구나 눈살을 지푸리지만 아무도 자기가 했다고는 않는다.
원내 곳곳에 쓰레기통을 마련하고 원내 방송을 통해 수시로 안내를 해도 아랑곳없는 것은 웬 일인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고성 방가하는 어른들이 있다. 남들이야 뭐라든 나 혼자 기분을 내면 그만 이라는 사고 방식이다.
갓 피기 시작한 벚꽃 가지를 꺾어 가는가 하면 개나리는 아예 다발로 만들어 간다. 눈으로만 즐겨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창경원 담을 끼고 돌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지각없는 사람들이 슬쩍 실례하는 것이 예사다.
인파가 지나가면 동물 가족들도 지쳐 늘어진다. 관람객이 던져 주는 사과·빵·오징어를 받아먹어 배탈이 나기도 하고 돌멩이·나무토막, 심지어는 불을 끄지도 않은 담배꽁초를 던져 주어 이를 물었다가 혼이 나는 일도 있다.
창경원을 찾는 관람객은 자기 집안에서는 휴지를 마구 버리거나 함부로 방뇨하지 않을 것이지만 창경원에서만은 왜 그런지 예사롭게 한다. 자기 몸 ,자기 집은 아끼면서 다른 사람의 것, 특히 공공시설을 아낄 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창경원 같은 공공 시설물은 국민 각자가 주인이고 임자다.
우리 모두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아끼고 가꾸어 문화인으로서의 긍지를 살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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