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증세 논쟁 앞서 복지 예산 누수부터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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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복지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죽은 사람 이름으로 복지 수당을 타내는 이들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가 하면, 자가용 굴리고 해외여행 다니면서 복지 급여를 타내는 부정 수급자도 널렸다. 한쪽에선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란으로 나라가 들썩일 정도인데, 다른 한쪽에선 어렵게 마련한 혈세가 눈먼 돈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복지 재원을 아무리 많이 마련한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감사원이 13일 발표한 ‘복지 전달체계 운영 실태’ 감사 결과는 복지 예산이 현장에서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는지 잘 보여 준다. 이에 따르면 32만 명의 사망자에게 639억원이 복지 급여로 나갔다. 담당 공무원이 장애등급이나 나이 등을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3만여 명에게 538억원이 잘못 지급됐다.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자료 공유가 안 돼 잘못 나간 돈만 17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새 나간 돈만 3년간 7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감사원이 적발한 것만 이 정도니 실상은 더할 것이다.

 복지 예산 누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깔때기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시정을 약속했다. 정부는 예산 누수를 막는다며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일선 주민센터에선 여전히 복지 공무원 한 명이 수백~수천 명의 수급 대상자를 상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 확인은커녕 자료를 수정·보완하기도 어려워 사통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지 예산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예산이 늘수록 나랏돈 새는 구멍도 커질 수밖에 없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것 못지않게 새는 구멍 막는 일이 중요하고 시급해졌다는 얘기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 사기꾼과 죽은 사람 복지에 쓰인대서야 누가 흔쾌히 세금을 내겠는가. 당장 부족한 복지 인력 확충과 부실한 통합관리 시스템 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새는 돈만 제대로 막아도 지금 같은 증세 논란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