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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극|무대와 객석의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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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막이 오른다. 연극을 보러 가면 대개는 막이 오른다.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 같은데서 학예회를 해도 막은 오르게 마련이고 어린 관중들은 흥분에 들떠서 『와아』하고 환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이래서 연극은 이미 시작되기 전부터 구경꾼의 흥미를 돋우게 마련인데 연극의 역사를 보면 극장에 막이 생긴 것은 비교적 근대에 와서의 일이다.
서양의 경우를 든다면 희랍시대의 극장에는 막이 없었다. 왜냐하면 야외극장이었으니까 올리고 말고 할 막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에도 막은 없었다. 그때는 이미 야외극장은 아니었지만 무대의 구조가 요즘 우리가 보는 극장 것과 달라서 역시 막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가령 양주산학탈춤 같은 것은 완전히 야외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막이 없다.
구경꾼이 사방을 둘러싸고서 탈춤을 구경한다.
지금은 막이 오르지 않으면 연극이 시작되지 않는 것 같은 고정관념이 들어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이지 이 막과 연극과의 관계는 꽤 복잡한 바 있다. 현대연극에서 막을 없애라는 주장은 일부에서 꽤 끈덕진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대 위의 연기자와 관중과의 정서적 교류를 두터이 하는 커튼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연극 가운데서도 굳이 막을 사용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두어달 전에 국립극장에서 상연된 미국극 『우리 고을』같은 작품을 예로 들 것 같으면 무대감독이라는 인물이 막에 올려있는 벌거숭이(즉 아무장치도 없는) 무대에 나와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다 물고 관중이 입장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시작할 시간이 되면 손님들을 향해 이제 아무개 작품의 무엇을 상연하는데 여기나오는 인물은 누구누구입니다 하고 말을 꺼냄으로써 연극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언뜻 보기에 작가나 연출자의 호기심의 발로라고 생각되기도 쉬우나 사실은 연극의 본질에 대한 깊은 배려가 거기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관객을 하나의 산경험으로서의 연극 속에 끌어들이기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고을』같이 평범한 어느 시골의 평범한 인간생활을 그리면서 매우 보편적 인생의 진실-사는 것이 무엇이며 사랑이니 결혼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의 뜻이 무엇인가-을 꿰뚫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관객으로 하여금 막 건너편의 인생을 건너다보게 하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탓이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연극 손님은 막의 존재에 젖어 있다. 우선 거기서 영화관이나 안방극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얻어온다. 막이 오를 때의 막연한 기대에 찬 일종의 흥분감도 흥분감이려니와 그들의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의 만족감의 표시로서 박수를 치는 일도 막이 내려갈 때 비로소 단서를 잡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막이 내릴 때 박수를 쳐주는 관객의 마음속에는 다분히 관습화된 극장매너에서 오는 일종의 예의감각도 끼여있을 것이다. 바로 커튼·콜이 그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이점인데 연극이 모두 끝나고 나서 막이 내릴 때 출연자들이 나란히 서고 그들에게 관중은 박수로 응답해준다. 그 응답의 열도에 따라 막이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다. 보통은 3회 정도, 그 이상 10회고 20회고 막이 오르내리면 그 공연은 대성공이다. 다분히 형식적인 것 같은 이런 행위 속에도 사실은 무대와 객석의 교류라는 연극 고유의 즐거움이 있다. 아니, 연극뿐 아니라 모든 공연예술의 즐거움이 곁들여 있는 것이다. 그 재미도 모르고 막이 채 내리기도 전에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뜨는 손님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은 왜 연극구경을 왔을까 하는 의아심마저 든다. 하기야 그 공연이 재미가 없었다면 별 문제겠지만. <여석기(고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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