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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 폴·리비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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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건국에도 비화가 많다. 당시 공코드의회에서 독립선언을 통과시키는 데에는 아무래도 표가 모자랐다. 독립지지파였던 폴·리비에는 연락을 받자, 그 역사적인 표결에 대기 위해 사흘 밤과 낮을 꼬박 쉬지도 않고, 말을 타고 달려왔다.
이 얘기는 특히 롱펠로가 시로 읊어, 미국서는 국민학교 아동까지 외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새 밝혀진 사료에 의하면 사실은 이때 리비에가 혼자 떠난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4월19일 이른 아침에 출발했었는데, 세 사람이 모두 곧 영군 정찰기병대의 기습을 받아 잡혔다한다. 이래서 제때에 콩코드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폴레스코트란 사람 한 사람뿐이었고, 리비에는 나중에 석방되기는 했으나 그가 탔던 말은 압수 당했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리비에는 뒤에 이 불멸의 야행중의 모든 비용을 보안위원회에 청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보면, 역사상 신화니 영웅이니 하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것도 드물다. 1백퍼센트 애국자라는 것은 실상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역사상 애국자란 혼자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거의 모두가 후세의 사람들이 미화하고 신성화해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비에의 오점도 사실은 그 자신의 죄가 아니라 애당초 그를 애국자로 만들어낸 사람들의 죄가 될 것이다.
또는 공연히 리비에의 먼지를 털어서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게 만든 사가들에게 더 큰 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애국자며 영웅을 역사 속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만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짜라도 애국자의 탈을 벗겨놓는다는 것은 가짜 애국자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몇 곱 더 큰 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역설도 나온다.
그런데도 역사상 이러한 탈을 벗겨놓은 사가들의 운명은 왠지 다 길었던 것 같다. 랑케는 92세에 죽었다. 드로이젠은 77세에 몸젠은87세에, 부르크하르트는 80세에, 마이네케는 83세에 죽었다.
세상의 유위전변을 지켜보겠다는 역사가의 집념이 이들을 오래도록 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세태는 오늘의 영웅이 비열한으르 전락되는 내일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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