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뒷맛 쓴 JAL기 처리|한말숙<소설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결국 패전해서 쫓겨 갔지만 인조 때 일본군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저지른 만행은 이루 필설로 다 할 수 없고, 이조 말에 한·일 합방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것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켜서 36년간 그들이 한 것은 사람도 신도 함께 용서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2차대전후 망해서 형편없었던 일본은 우리나라의 6·25 동란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부흥하기 시작하더니 근년에는 세계 제 몇 위 따위 소리까지 듣게끔 되었다. 작금에는 정경분리 어쩌고 하며 북괴한테 살살 접근하며 드디어 북괴에 세균까지 보내서 한국에 「콜레라」가 발생하게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한국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본국의 일본 민간인 백 여명을 태운 일본 동경 발 일본 복강 행 일본 항공기가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인 극좌 적군파 폭도들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어 북괴로 가다가 우리나라 서울 김포비행장에 지난 31일 하오에 불법 불시착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 시민은 물론 전 국민은 마치 내 부모, 내 형제, 내 남편, 내 자식, 내 친구가 납치된 것처럼 문자 그대로 법석을 피웠다. 우리 정부가 베푼 노고는 인도주의의 극치였다. 좀 해서 「라디오」고「텔레비젼」을 듣지도 보지도 않던 시민들도「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납치된 무고한 승객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일념에서다.

<구원을 초월한 인도주의>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느나라의 누구이든 간에 무고한 자유민이니까 우리는 북괴로 가지 못하게 갖은 정성을 다한 것이다.
비행기 속에서 산소가 없어 질식하지나 않을까. 굶주려서 지치지나 않을까, 발병하지나 않을까…저러다가 기어이 북괴로 잡혀가서 그 고초를 당하면 어떻하나‥시시각각으로 가슴을 졸였다.
왜? 작년 말에 KAL기가 납북되어 아직도 11명의 우리 동포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돌아온 39명이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우리는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거기서 강제 억류되어 있는 승객의 가족들의 아픔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관민의 완전 일치한 협력으로 JAL기 승객들은 하오 2시 25분에 범인들에게서 풀려 나와 저희 나라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간절히 그리고 애타게 노력하던 우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고향에 가서 그들의 가족들과 만날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 한이 없다.

<너무 염치없는 일본 신문>
그런데 왠지 뒷맛이 산뜻하지 않다. 일본에서 우리 정부에 감사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괜히 서울에서 머무르게 했다. 평양으로 갔어도 바로 석방되어 왔을 텐데 운운하는 염치없는 사람도 있다니 말이다. 원래 일본이 얌체라는 건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은인에게 침을 뱉어도 유분수다. 북괴 찬양하는 기사를 싣기도 하는 신문도 있었다니까. 그런 신문은 매일같이 적군파 학생들이 일본 비행기에 일본인 승객을 싣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북괴로 강제 납치하라고 권하지는 않는지? 서울에 머무르게 했다고 불만을 말하는 일본인은 오늘밤 그의 집에 강도가 들어가서 그의 처자를 묶어서 인질로 잡아가며 일본도를 휘두를 때 그 강도를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그의 처자를 구출하려는 사람에게 남의 간섭 말라고 할 사람일 것이다. 그런 건 사람도 아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에게 화낼 것도 없다. 용서해 주기로 하자. 자고로 우리는 일본에 덕을 베풀어 왔다. 이번 JAL기 승객들에게도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덕을 보였을 따름이니까.


일부 일본인들은 사람도 비행기도 바로 돌려 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계 이목이나 선전 효과를 노려 북괴가 그럴는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매일같이 적군파 학생들이 일본기와 일본인을 납북해 간다는 것을 상상하니 내 나라 일이 아니더라도 딱한 심경이 드는 것은 역시 덕이 있는 까닭일까? 은인에게 침을 뱉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차후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나는 이번처럼 순수하게 마음을 쓸것인가?
고향이며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는 KAL기 승객의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하루빨리 우리는 우리 동포를 구출하는데 전력을 다 해야겠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노력으로 제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부쩍 더 납북 KAL기 승객 구출에 조바심이 터진다.
전 인류는 핵폭과 못지 않게 이런 공적들의 가공할 만행을 깨달아야 하며 범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