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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치관의 변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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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의 변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문학이란 그 시대와 그 사회에 있어서 정신의 풍속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의 정신이라든가 어느 사회의 정신은, 항상 가장 높은 정신의 질과 폭을 보여주어야 하는 문학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가치관은 그 문학작품 안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치관과도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안에서 변화해온 가치관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배경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춘원이 새풍속 도입>
신문학초기에 있어서 한국문학의 가치관은 한국의 역사적 격동과 관계를 맺고 있다. 1910년을 전후한 한국은 전근대적 봉건체제의 붕괴과정을 겪었고, 19세기적 제국주의의 침략에 휩쓰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세계사조에 먼저 눈을 뜬 식민지 지식인들- 작가들의 관심이 사회적·민족적 운명과 직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소설에 새로운 문화와 풍속을 도입시킨 춘원 이광수의 문학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한국인의 폐쇄된 의식의 지양과, 서구의 새로운 지식의 배움과, 자유연애로 대표될 수 있는 풍속의 개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춘원의 문학이 봉건적 제도와 풍속, 그리고 유교적 정신사와 인습에 대한 근대적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이 계몽적 성격을 띠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우리 문화와 서양문화의 상위에서 오는 혼란과 서양문학의 근본을 파악하지 못한 피상성과 어떤 준비과정이나 내적 필연성을 도외시한 외국사조의 흡수라는 점에서 춘원의 문학은 그 한계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후 일제 말까지 한국문학 속에 무수한 외국사조가 도입되지만 그것의 토착화 내지는 보편화가 어려웠던 것이다. 춘원의 문학에 대립된 김동인의 문학도 춘원의 그것보다 다채로운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서 소박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횡보는 심화된 관찰>
이러한 경향에서 보면 염상섭이 자연주의문학을 주창하지만 1920년대의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파헤친『삼대』에서 오히려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의미 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주의>를 가치관으로 도입하려는 많은 작가의 노력이 실패한 반면에 그것과는 상관없이 한국사회 모습을 정직하게 전달하려는 태도가 성공적인 작품을 낳았다는 것이다. 염상섭은 춘원과 동인과 동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춘원보다 온당한 태도로 신문화를 받아들였고 동인보다는 심화한 눈으로 사회를 관찰하였다. 그것은 이 작가가 춘원이나 동인과는 다른 가치관 위에서 있음을 말한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채만식의 문학이다. 여기에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미두장이 있고, 신학문을 배웠으면서도 재래적 관습에 얽매인 여자, 의사지망의 독학생, 남의 예금을 횡령하는 은행원, 음흉하고 악착같은 거간꾼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개화이후 특히 일제시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그런 점에서 채만식과 염상섭은 같은 가치관 위에서 있다.
1920∼1930년대의 「프로」문학은 앞에서 본 작가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가령 박영희의 『사냥개』에서 수전노의 주인공이 돈을 움켜쥐고 자기의 사냥개에 물려 죽는다는 이야기는 그것이 단순히 그 시대의 풍속이나 정신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말하자면「프로」문학에 있어서 문학의 역사성과 사회성은 춘원문학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 된 것이었다.
춘원의『무정』이후 20년 사이의 문학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그것이 여러 계층을 전형화 함으로써 사회현상을 드러내 주고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이 대사회적 의미의 확산에 보다 많은 역점을 두고 있다는 그 사회의 가치관에 기인하며 이런 경향이 한국문학의「리얼리즘」에 어느정도 기여했던 것 같다.

<30년대 와서 신국면>
1930년대에 있어서 이상의 출현은 이러한 경향에만 휩쓸리고 있던 한국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복잡한 사회현상 속에 끼어있는 개인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개인의 인식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이 사회나 연사에 대해서 그의 무력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찢겨진 자화상을 붙들고 구제받을 수 없는 자신에 대해서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현대적 상황- 이상은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 대해서 다른 작가들과 태도를 달리 한다. 즉 문학을 자아의 인식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상은 인간이 무엇이냐는 영원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하려했고 그것은 곧 한국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의 변천에 가장 괄목할만한 장을 제시하였다. 사회에 대해서 소설의 계몽적 역할을 의식한 춘원 문학에서 사회현상을 재현하는 사실주의문학으로, 여기서 다시 춘원과는 다른 의미에서 문학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한 「프로」문학으로, 사회속에 끼어있는 개인의 비극적 삶을 자각한 자아인식의 문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곧 한국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의 변화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일정땐 서정문학풍>
여기에서 다시 일제의 탄압으로 사회적 관심을 보인 작품이 검열을 받게됨으로써 김동리·황순원의 토속적·서정적 문학이 등장한다. 그것은 곧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는 상관이 없으면서(그래서 일제의 탄압을 받지 않는다) 한국인의 전통적 정신세계를 표상하고 그 속에 한국인의 미의식(향수와 비애가 갖고 있는)의 일면까지 나타내준다.
이상의 작품들이 일제시대에 나왔다는데 주목하여야 한다.
김동리·황순원의 뒤를 이은 것이 흔히 말하는 전후문학이다. 6·25동란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 전쟁의 뒷이야기를 쓴 그들의 문학은 전후 한국사회의 참담한 모습을 드러내준다. 그들의 문학은 전쟁의 엄청난 비극성 앞에서만 인간을 파악하였다. 사실상 그들에게는 전쟁의 혼란상 외에는 다른 관심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전쟁의 충격이 컸다.
그러므로 그들 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경험위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10년뒤 전후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한국문학의 가치관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된다. 이 새로운 작가들의 주인공들은 무위의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모럴」을 확립하지 못한채 거리를 방황하거나, 시골에서는 천재였으나 서울에서 열등생이 되어버리거나 새로 생긴 주택지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인물들로 일상적 자아의 무료함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에서 오는 작가의 실존의식에 기인하고 있다. 4·19, 5·16이후 안정된 듯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위축되어 가는 현상은 오늘의 한국에만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곧 최근의 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의 변화와 무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외국사조 개입 현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춘원·김동인·염상섭·채만식·박영희·이상·김동리·황순원등의 문학은 일제시대라는 특수상황에서 식민지적 비극에 의해 그 가치관의 변천을 겪고, 해방후 전후 문학, 60년대 문학이 그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한 것처럼, 문학에 있어서 가치관의 변천은 사회현상의 변화와 정신의 풍속의 바뀜에 따라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 볼 수 있는 낭만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초현실주의·실존주의의 연결이, 그 나라의 시대적 상황과 정신의 풍속의 바뀜에 의한 가치관의 변천인 것 처럼.
그리고 한국문학의 변천속에 외국사조(낭만주의·자연주의·실존주의등)가 개입되고 있는 것도 동시대적인 현상은 아니었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상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 세계속의 한국문학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차례>
ⓛ전통의 문제점
②근대화의 특수성
③보편성과 고유성
④가치관의 변천
⑤번역의 과거와 현재
⑥한국문학의 현실
⑦한국문학의 내일과 그 문제점
김치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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