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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을 가는「캄보디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줄타기 외교」로 간신히 중립을 유지해온「노로돔·시아누크」국가원수의 실각으로 이미 난마같이 얽힌 「캄보디아」를 둘러싼 동남아 정세는 가일층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시아누크」공이 두 공산거인국의 지원을 모색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 예의 외교곡예를 한창 벌이고 있을 때 「론·놀」수상과 「시소와트·시리크·마타크」부수상이 영도하는 우파세력은 무혈「쿠데타」로 이 국가원수를 권좌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불법으로 「캄보디아」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월맹군과「베트콩」의 역력에 불안을 느낀 「캄보디아」우파군부는「시아누크」를 실각케 하는데는 우선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나 아직까지 자국의 안보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이공」의 외교관측통들이「캄보디아」의 정변을 환영하면서도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월남전의 불길은「라오스」·「캄보디아」로 가일층 번져 동남아정국을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있다.
국가원수의 대권을 대행하게 된「쳉·헹」이 국민회의 의장은 새 정권의 외교노선은 엄정중립에 있다고 역설하였으나 그「중립」이라는 것을 우파권력자들이 어떤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는지 분명히 하지 않고 있어 「캄보디아」의 향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에 싸여 있다.

<월맹압력확대가 불씨>
「무자비한 국제정치무대란 장기판에서 약한 졸이 살아 남기 위해 동-서 두 진영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실리외교를 해야만 했던「시아누크」도 월남전후의 월맹의 압력증대를 두려워 한 나머지 69년 미국과 외교관계를 재개, 힘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쓴 것은 분명하다.
이번 정변이「베트콩」의 생필품매점으로 인한 물가고등이 얽힌 경제사정의 악화에도 근인이 있었기는 하나 미국의 단계적 철수로 오는 월남전의 축소의 반사작용인 월맹의 압력증대에 대한 불안이 최대의 요인으로 등장했음은 이곳의 군사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지난 8일부터 반월맹·반「베트콩」의 불길이「캄보디아」를 휩쓸었을 때「시아누크」는 이는 미국의 영향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우파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고「쿠데타」가능성까지 예견하면서도 귀국하지 않은 저의가 자기의 외교솜씨로써는 월남전에 깊숙이 발이 빠진 「캄보디아」의 난국을 타개할 자신이 없었는데 있었을지 모른다.
이젠 좋든 싫든「시아누크」외교시대는 물러가고 불투명한 새 중립외교의 막이 올랐다.

<더 많은 난제제기>
하나「캄보디아」정변은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 더 많은 새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를 누가 어떻게 푸느냐는게 더 큰 문제이다. 질적으로 보잘 것 없는 3, 4만병력의「캄보디아」군대가 불법 진주한 4, 5만의 월맹군 및「베트콩」군대와 어떤 방법으로 결판을 내느냐하는 난제중의 난제가 동남아 정세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월남외의 외국에 지상군을 파견치 않겠다는「닉슨·독트린」에 스스로의 몸이 묶여 있는 미국이「캄보디아」를 위해 강력한 형태의 군사개입을 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아주 적다.

<월남군 지원가능성도
가장 실현성이 높은 것은 월남군의 지원을 얻어「캄보디아」동부에 있는 월맹군진지를 협공하는 전략이다.
하나 이 방법을 써도 문제는 심각하다. 「캄보디아」를 월남전을 위한 발진기지와 피난처로 삼고 있는 공산군이 이른바 성역을 잃고「라오스」나 월남으로 분산하게 되는 사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련의「체코」침략과 같이 월맹이 전격적으로「캄보디아」를 침공할 최악의 사태도 전무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태국은 20일 2개 대대규모의 병력을「라오스」에 투입하여 동남아 정세의 긴박감을 드높였다. 태국군 개입의 저의는「라오스」사태가 태국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려는데 있으나 「캄보디아」정변후의 정세를 충분히 감안한 차원 높은 태국의 전략의 일부로 해석된다.
소련과 중공은 아직 이렇다할 구체적 움직임은 보이고 있지 않으나 기회있을 때마다「시아누크」정권을 뒤엎는 세력 앞에는 좌시 않겠다고 공언해 온 터라「캄보디아」군부내의 좌파세력을 사주, 지원하여「시아누크」복권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될 경우「캄보디아」는 내전을 치를 가능성이 커질 것인데 미국이 그런 상황하에서까지 수수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공산측도 보조불일치>
자칫하면「캄보디아」는 미국과 소련-중공-월맹의 공산세력간의 싸움터가 될지 모르나 공산 3개국외 이해관계도 동상이몽인 만큼 공동보조를 취하리란 보장도 없다.
아뭏든 현재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월맹군의 성역이 매우 위태롭게 됐다는 것과 월남전이「캄보디아」로까지 파급될 위험성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곳「사이공}에서는 벌써 월남·「라오스」·「캄보디아」간의 동맹관계의 구상이 성급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월남전쟁이 공식적으로「인도차이나」3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사이공=이규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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