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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국화꽃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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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멜로에서 구닥다리 냄새를 최대한 지우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관객들이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멜로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하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국화꽃 향기'는 시효가 지난 통조림 뚜껑을 딴 기분과 함께 이런 물음을 남긴다.

깔끔한 연출은 분명 돋보이지만, 어떠한 반전도 추가하지 않고 정직할 정도로 원작 그대로를 살린 이 영화에서 소설을 넘어서는 영화적 재미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잘 알려진 대로 대학 선배 희재(장진영)를 짝사랑하던 후배 인하(박해일)가 7년을 기다려 맺어지지만 곧 희재의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희재는 불의의 사고로 약혼자와 부모를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다 인하의 헌신적인 구애를 받는다. 행복하던 순간도 잠깐, 임신한 희재는 위암 판정을 받는다.

영화는 라디오 PD인 인하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희재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나중에는 희재도 익명으로 인하의 프로에 사연을 띄운다.

두 사람은 서간체 소설처럼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몰래 고백한다. 직접적인 대화보다는 내레이션을 택해 신파를 절제하려는 시도로 보이나 내레이션 비중이 지나쳐 영화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때문인지 '국화꽃 향기'는 배우들의 연기를 딱히 꼬집어 흠잡을 수 없음에도 관객들은 선뜻 손수건을 꺼내들지 못한다. 촬영장에서 특별한 노력 없이도 주르륵 눈물을 잘 흘려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장진영의 연기도 감정의 범람을 유도할 정도는 아니다.

외골수로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박해일의 애처로운 눈빛 연기는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 소설의 인하가 훤칠한 체격, 준수한 외모에 해박한 음악지식을 지녔던 데 비해, 박해일의 인하는 어리고 평범하며 어딘지 모성애를 자아내는 듯한 인상이다. 그게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또 두 배우가 조화를 이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듯 하다.

조연으로서는 희재의 친구이자 산부인과 의사 정란으로 등장하는 송선미가 눈에 띈다. 희재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는 인하에게 위급할 경우 몰핀 주사를 놓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 등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묵묵히 지켜가는 모습이 주인공들 못지 않게 돋보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이정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28일 개봉. 전체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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