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이라크 공격에 냉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태국의 운동가 70여명이 9·11 시위에 참가해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중단하라고 미국에 촉구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심상치 않은 위험을 만들고 있다며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을 국제연합(UN)에 넘겼다.

이제껏 후세인 대통령이 유엔 무기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부시 대통령은 유엔 각국의 대표들에게 "이라크 정부가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수 백만명의 목숨과 세계 평화를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하기 위해 여러 나라로부터 협조를 받아낼 가망성은 아직 희박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줄곧 미국의 편에 서왔던 영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의 견해는 유엔을 통한 위기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국과 일본, 필리핀 및 뉴질랜드 등은 미국에 자제를 요청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등 국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도인 국가들과 의견을 같이해왔다.

대체로 미국에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냈던 호주조차도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약화된 지지를 표현했을 따름이다.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며 후세인 대통령이 대량 살상 무기를 전략 배치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유엔에 행동에 나서 이라크에 관한 결의안을 집행하라고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라크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6개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참고 보고서를 배포한 바 있다.

이보다 먼저 부시 대통령은 "국제적인 문제"라며 목요일 유엔에서 이라크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증거가 없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테러 조직을 근절하겠다는 미국의 결단에는 공감하지만 이라크 정권 교체 선동을 목적으로 군사작전을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이 지역 다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 전 로스앤젤레스를 방문, 말레이시아의 외교 정책은 국제법과 일치하는 원칙들을 따를 것이지만 그 어떤 나라에도 '맹목적인 협력'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학생 그룹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 이라크가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 군사 행동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라크 정부가 추방한 118명의 노동자들을 대피시킨 필리핀은 전 세계 반테러 작전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며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반대해왔다.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하면서 지난 몇 달 간 양국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이라크에 무력을 사용하면 자국 내부 사정이 불안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후세인, 권좌 머무를 수도

호주는 말로는 미국의 대(對) 이라크 행동 요청에 응해왔으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은 유엔에 맡겨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캔버러에서 열린 기념식 후 "책임은 유엔과 제빨리 미국을 비난한 사람들에게 있다. 내 견해로는 너무 핵심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안 신문의 질문에 "미국은 비판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유엔의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이라크의 잘못이며, 지금까지 그 잘못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고의 문제다"이라고 응답했다.

하워드 총리는 후세인 대통령이 유엔의 요구에 응한다면 그를 하야(下野)시킬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인 개입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고수하며, 유엔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개 토론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라크 총리는 뉴질랜드 헤럴드로부터 질문을 받고 "몇몇 국가들이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이틀 전 열린 미국의 상원 청문회에서 정보위원회 의원들이 이라크가 2년 동안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총체적이고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한 중국

중국 외무성도 이라크 문제는 "유엔의 틀 안에서 정치,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간 중국 수뇌부가 외교적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왔다는 점에 기인, 몇몇 전문가들은 훗날 상당한 이권을 약속 받는 대가로 미국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 건너 우방인 미국을 지원하느냐, 그 어떤 해외 군사 공격에도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에 따른 국민들의 요청을 따르느냐 하는 것 사이에서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의 대다수는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raig Francis (CNN) / 이정애 (JOINS)

◇ 원문보기 / 이 페이지와 관련한 문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