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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진실 정신」을 되찾자|신상초<언론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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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 32주기 일이다. 도산 선생은 우리 민족 근대화 운동의 빛나는 선구자이시고, 또 독립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가 창립한 흥사단은 면면 60년의 역사를 지속하면서 도산 정신에 따라 단우들이 자기 수양을 하는 한편 도산 정신을 대중 앞에 선양해 왔으므로 우리 국민 가운데 도산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또 무슨 방법에 의해서 근대와 운동·독립 운동을 추진해 왔던가를 알고서 그들 흠모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산 정신의 기본을 밝혀 보면 다음과 같지 않나고 생각한다.
도산은 「인간 만들기」와「나라 만들기」를 직결시켜 사고하고 행동했던 분이다. 그는 민족의 개개인이 동맹 수련하여 부단히 자아를 혁신하고 「건전 인격」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민족이 독립을 쟁취할 수도, 보전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 독립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민족만이 독립을 누 릴 수 있다』고 한 것은 그의 보물 같은 기록 중에서도 유달리 알려진 명언이다. 이 까닭으로 그는 민족성 개조에 앞장섰다.
그러면 그는 민족성 개조의 방향을 어디에 다 두었던가. 그는 우리 민족이 거짓말을 잘하고, 공담과 허식을 좋아하고 겁유 하고 의에 충실치 못함을 성격상 큰 결함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을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도산은 거짓을 철두철미 배척했는데 『죽더라도 거짓말은 안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또 동지나 후배·제자들을 그렇게 훈도 했다. 도산이 자아 혁신을 이룩하기 위한 수양 방법론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그는 동맹 수련을 가지고 상기 덕목을 실천하고 「신성 단결」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산은 교육자이자 정치가이고, 사상가이자 사회 운동가였다. 이처럼 그의 생애와 활동이 다채로 왔던 것은 그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만한 다재다능의 지도자였음을 입증한다. 그는 한번도 일제의 악독한 탄압에 굴복해 본 일이 없는 강철의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 의 인품이 얼마나 뛰어나고 너그러웠던가는 그를 사찰하던 일본인 형사들이나 그를 가두어 놓은 형리들도 사적으로는 그를 존경해마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서도 추측이 가고도 남으리라.
작년에 우리는 3·1운동 5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다. 50년 전 3·1운동 당시에는 위대한 지도자 33인이 나타나서 독립 운동을 영도했었는데, 작년에는 외제 가짜 박사 33인이 나타나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위대한 33인」에서 「추악한 33인」으로의 변천 속에 우리는 우리 민족 반세기의 도덕적 타락의 「심벌」을 뚜렷이 간주하게 된다.
왜 이처럼 슬픈 전락의 기록을 남겼을까. 나는 그것이 바로 도산이 말하는 「진실 정신」 「대공 정신」이 날이 갈수록 희미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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