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도 부동산처럼 거래 실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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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입니다. 며칠 전 제가 1930만원짜리 중고차를 구매했는데요. 매매상에게 세금계산서를 달라고 했더니, 부가세를 자기들한테 추가로 지불해야 발행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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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질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중고차 ‘위장 직접거래’의 피해 사례로 보고 있다. 위장 직접거래란 중고차 매매상(딜러)이 자동차의 원래 주인과 새 주인이 직접 차를 사고판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러면 딜러는 각종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위 피해 사례처럼 구매자가 딜러에게 세금계산서 발행을 요구할 때 추가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다.

 국토부가 집계한 2012년 중고차 거래량은 322만 대다. 2005년(172만5000대)에 비해 거래량이 약 87% 늘었다. 지난해 연간 시장 규모는 40조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에선 직접거래로 위장하는 방법을 통해 연간 3700억원의 탈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지난해에는 거래량 중 135만 대가 당사자 간 직접거래로 주인이 바뀌었다. 국토부는 이 중 90%는 딜러를 통해 거래됐는데도 직접거래로 위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중고차는 고가의 거래 대상인 데다 차량 하자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친인척이나 오랜 지인 관계가 아니면 당사자 간 직접거래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직접거래로 위장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이렇다. 딜러는 A씨에게 승용차를 1000만원에 구입한다. A씨는 차를 팔았다는 증명서를 시·군·구청에 내면 더 이상 자동차세 등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이후 딜러는 B씨를 만나 차를 1200만원에 팔기로 한다. 딜러는 이때 차량 명의를 B씨로 이전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A와 B가 직접 사고판 것처럼 꾸며진다. 이러면 딜러는 이 거래에 대한 부가가치세·종합소득세·인지세·증지세 등 모두 30만4000원가량의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1년에 네 번 이상 자동차관리사업 실태 점검을 통해 각종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위장 직접거래를 적발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개인 간 계약 형식으로 이뤄지는 거래의 진위를 점검해야 하는데, 판매자와 구입자가 “딜러 없이 직접 사고팔았다”고 입을 맞추면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실태 조사를 맡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설명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구매자와 판매자도 세금을 부담하거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 같은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중고차 거래실명제’를 내년 1월 1일부터 실시한다고 7일 밝혔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A씨처럼 딜러에게 차를 판 사람은 관청에 제출하는 서류에 매수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꼭 써야만 차량 이전 등록이 가능해진다. 딜러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는 게 신고되기 때문에 향후 해당 차량 판매에 대한 세금을 피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국토부는 이 같은 실명제를 통해 이른바 ‘대포차’로 불리는 불법 명의차량 발생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석창 국토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은 “투명한 중고차 거래관행 정착과 세금누수 방지, 대포차 예방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이뤄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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