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의 자서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3년전「도오꼬」장석씨로부터 소중히 간직하여 오던 의사의 유묵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을 기증받은 일이 있었다. 돌아와 학교 신문에 실었더니 재학중인 오은석군이 찾아와 가친이 또한 유묵과 문서를 간직한다고 하였다.
그중 글씨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임생각 천릿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 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정을 저버리지 마소서)는 이미 알려진 것이나 문서란 1910년 3월18일자로 여순의「구리하라」(율원) 전옥이 경성의「사까이」(경)경시에게 사형을 8일 앞둔의사 최후의 모습을 보고한 편지였다. 그 첫 머리에는 『안중근 전기는 겨우 요사이 탈고 되었기에 목하 애써 청사 시키고 있어 끝나는 대로 곧 내송 하겠다』고 하였으며 이어서 계속 집필중인 「동양 평화론」은 서론만이 끝났다하고 본론을 위하여 의사가 『형 집행기를 15일간쯤 연기하여 달라고 원출하였으나 허가 아니될 것으로 생각되니 본건 완성은 난망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이 매우 귀중함을 깨닫고 복사하여 몇 곳에 나누는 동시에 이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일본에서 찾아야될 것으로 판단하였었다. 그후 일본에 갈 기회마다 우리 사료수집에 유의하는 인사 또는 최근세사를 전공하는 학생을 만나 의사 문서의 발굴을 부탁하였다.
작년 11월에는 신라사를 강의하는 「스에마쓰」(말송) 교수도 만났으며 또 한국연구원을 찾아서 최 원장에게 부탁한 일도 있었다. 그 후 불과 얼마 아니되어 「스에마쓰」교수는 고서 목록에서 「안중근 자서전 (등사) 일만이천원」이라 한 것을 주목하고 서점으로 뛰어갔으나 때는 이미 한국연구원에서 확보한 직후였다.
3·1절을 맞아 누구나 고인을 추념하게 된다.
근년에 이르러 경향 각지에서는 동상이나 기념관의 건립을 위하여 고마운 노력과 경비가 경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눈에 아니 보이는 일에도 더욱 많은 힘과 정성을 모았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내실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의사순국 60주년을 맞아 이제서야 그가 애써 남긴 장문의 자서전을 찾았으니 반가움과 동시에 송구함을 느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