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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원색의 동북아를 가다|「싱가포르」서 …이창열 <상대교수·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백일홍 그늘 밑에서 백일몽을 꾸는 기분이다. 서릿발처럼 추운 영하 20도의 조국을 떠나 영상 30도인 혹서의 지역으로 당일(1월28일)에 날아왔기 때문에 더욱 멍해지는 것 같다. 너무 덥고 원색이 난무하는 세계에선 인간에게 원시적인 단순성만을 강요한다.
5년만에 다시 보는「방콕」은 인구 2백만의 대 도시로 발전해 있었다. 자동차가 20만대, 10명에 한 대 꼴이다.「오픈·카」「스포츠·카」등에 서너 명씩 멋대로 앉아 마음껏 달리는「젊은이들」을 볼 때 마치 미국에 온 기분이다. 월남 경기이래「방콕」은 초「미니·스커트」아가씨와「터키」탕 등의 범람과 아울러 국제적「어뮤즈먼트·코너」로 등장한 것 같다.
태국의 경제성장은「호텔」경기 때문이란 인상이 짙다. 확실히「방콕」에는 관광객이 들끓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만 하다. 68년과 69년 해마다 3억 달러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우리 나라의 4천만 달러 수입과는 비교될 수 없다.
깨끗한 도시와 야자수 밀림 사이를 운하로 누비며「듀리앙」「망고」나 또「파파이아」「바나나」등 열대과실을 파는 수상시장과 황금빛 찬란한 수천의 탑식 사원들과 모든 것이 이국적이며 독창적이다.
원색의 난무는 자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부에도 꽃피고 있다.「싱가포르」에서 만난 피부가 새까만 인도청년「프로·골퍼」가 생각난다. 그는 애인을 가지려면 중국처녀가 가장 좋다고 했다. 피부가 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조관념 때문이라 했다. 중국처녀는 80%의 충성심을 믿을 수 있는데 인도처녀는 50%,「말레이지아」처녀는 20%밖에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돈 많은 중국인은 영국여인을 애인으로 삼는다고 한다. 돈이 적은 영국선원들은「말레이지아」나 중국여성을 품에 안는다고 하는데 이것이「싱가포르」의 상식이었다.
영국함대가 입항해서 1, 2천명의 수병이 들이닥치면 2백3만 인구의「싱가포르」시장은 한꺼번에 좁아진다. 이들의 욕구를 충족 시켜줄 여성부대의 긴급 보급기지는「말레이지아」국경 너머의「조홀」시라고 한다.「싱가포르」신문에 「쿠알라룸푸르」에 사는「탄」씨 내외의 득남경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개띠 아들을 초하루에 낳았기 때문에 나는 세계서 가장 행복한 남편입니다」라는「탄」씨의 소감을 소개하고 있다. 결혼 6년만에 아들 셋과 딸 둘을 둔 남편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이 지방엔 배부른 여자가 많은 것이 유독 눈에 띈다. 우리 나라 인구 증가율은 2.2%지만 대만을 포함해서 3~3.8%에 이른다. 소시민을 위한 국영「아파트」건립들이 대 성황이다.「방콕」「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홍콩」..어디를 가나 고층「아파트」의 신축이 대 유행이다. 밀집 인구에 대한 주택 해결이 곧 위정자로선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가도 생각했다.
때마침 구정이다.「싱가포르」는 연 3일3야 폭죽소리와 화약 냄새로 전 시가가 발칵 뒤집혀있다.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억원 대를 헤아리는 딱총 값이 연기로 날아간다는 것이다「말레이지아」와「싱가포르」서는 설날이 네 번 있다. 구정·회교 역정·「힌두」교 역정, 그리고 신정이다. 양력10월에「힌두」교 정월이 오는데 소수민족이기에 하루만 공휴일이다. 11월 회교정월엔 2일간 공휴일이고 「크리스머스」와 신정이 하루씩이며 구정이 2일간 공휴일이다.
외교관은 비록 한 명도 허락되지 못했을 망정「싱가포르」엔 한국 무역관이 있고「쿠알라르」에선 우리교수와 태권도 사범들이 존경받고 있다.「브루네이」와「사바」엔 교포들의 활동이 크다. 동시에 한국상품 홍삼과 더불어 재작년부터 경편직물이 크게 수출돼 이 지방 여성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중국 처녀도「말레이지아」주부도 인도여인도 영국아가씨도 모두 한국산 직물로 단장하고 거리를 활보한다.
무역관장 말로는 옷감도 좋지만 상표를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일본을 모르는 지방민이 있더라도「소니」니「내셔널」이니 하는 일본 상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상표를 수출한다는 것은 신용의 수출이다. 우리 나라 기업의 신용과 수출 태도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올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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