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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의 명산지 |남원의 금속공예|세월 따라 시속따라 옛모습 잃어 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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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속공예의 명산지 전북 남원에서 그 풍성하던 옛 솜씨들은 이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운봉의 꽹과리, 화정의 주기 및 동종은 벌써 옛 얘기가 돼 버렸고, 왕정의 백동 연구만이 아직 명맥을 잇고 있어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계승됐던 옛 터전의 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상업도시로 발달한 남원은 예부터 삼남 물산의 집산지. 따라서 인근 마을에서 공예품의 생산이 활발했고 특히 금속 공예는 그 우수한 솜씨가 전국에서 첫손 꼽히어 금세기에 이르도록 명맥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들 재래 공예품은 기계문명에 밀려 벌써 버림받은 지 오래다.
여러 분야의 장인들은 전업을 했거나 딴 고장으로 떠나 버렸고 목숨처럼 아끼던 도구를 엿장수에게 주어버렸으며, 점포의 상품은 새로운 기계제품으로 교체되어가고 있다.
「운봉쇠」 라 하면 전국에서 가장 좋은 물건으로 친 남원군 운봉 및 주천 일대에서 제조한 꽹과리와 징을 가리킨다. 방자쇠를 불에 달구어 쳐서 늘려만든 특수한 금속공예인데 오늘날엔 그 흔적조차 없다. 이 지방에서 마지막 공장이 폐쇄된 것이 7년 전. 요즘에는 경남 거창에서 한두개씩 가져다 파는데 거기에도 좋은 대장이 없다고 한 유기 상점에서 귀뜀한다.
읍내 가까운 화정리는 놋쇠 주물로 유명하던 장인마을이다. 대소가 16집이 모두 이『노랑쇠 일』(놋그릇 만드는 일)을 했었지만 「스텐」그릇이 범람하면서 위협을 받기 시작, 4년전에 나머지 6집마저 그만 일손을 거두었다. 『밥그릇을 만들 때만 해도 한장 토막에 만들어 대주기가 바빴는데….』 농가의 부업 삼아 쇠방울 (핑경) 을 몇개씩 만들어 내다 팔고 있는 강인선씨 (36) 의 말이다.
그런데도 성업중인 것은 왕정리의 백동 담뱃대이다. 마을에 공장이 3개소, 종사하는 기능공이 10여명. 이곳 제품이 전국에 퍼져나간다.
주석과 「니켈」을 주원료로 하는 백동 연구는 역시 하나 하나의 공정이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전근대적인 수공업 제품이다.
재료가 비싸고 귀해서 아예 백동 고물을 사다가 재생하는 것이다. 도가니에 쇠를 녹여 두툼한 쇠가닥을 백짓장처럼 얇게 두드려 펴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감이 만들어지면 필요한 만큼씩 끊어내어 몸과 통을 각기 초벌 두벌 세벌 네벌 씩 철골에 대고 쳐서 윤곽을 잡고 또 줄로 썰며 황땜을 해서 통잡아 내면 일단 일이 끝난다. 활로 윤내는 작업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는 분업이며 장사에게 넘어가 비로소 대(연죽)가 끼운다.
백동 연구는 하루 열 개 남짓 만드는 게 고작인데, 내는 값이 47원. 재료비가 절반이나 되니 하루 2백원 벌이도 안된다고 저마다 투덜거린다.
연구에 동입사·은입사와 같은 정교하고 고급한 물건은 아예 생각조차 않는다. 노장인은 세상을 떠났고 젊은 사람이 하나있었다지만 골머리 아프다고 집어치우고 장삿길을 떠났느라고 전해준다.
특히 귀한 인간문화재인 동종을 지을 줄 아는 명장인은 세월을 잃은 뒤 어디론가 향방 없이 떠났다고했다.【남원=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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