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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만약에 …만약에 안돌아 오신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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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만일 아빠가 영원히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나는 어쩌면 영원히 불쌍한 인간이 될지도 몰라요.』-KAL기 피납자 중 돌아오지 않은 부조종사 최석만씨의 맏딸 은주양(15·중앙여중2년) 은 14일 하오 몸져누운 어머니 장순옥씨(37) 에게 얼굴을 파묻으며 흐느껴 울었다.KAL기가 납북되고 아버지에게 혐의가 돌아가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최양은『아버지는 절대 그럴 사람아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일기를 썼었다. 『아빠를 빨리 돌려 주셔요』-최양은 사무치게 아빠를 그리워하며 일기를 썻었다.
▲12월 15일(월요일·맑음)나는 선생님 말씀을 들었을 때 왠지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말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설마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신문 파는데서 신문을 보니 아버지 사진이 크게 나타나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아찔하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공범이란 것이다. 설마 아버지가! 나는 믿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일 어머니가 절에 가신다고 한다. 아버지를 위해서 불공을 드려야만 한다고.
▲12월 25일(목요일·맑음)「크리스머스」다. 쓸쓸하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기쁘지 않다. 회사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5천원씩 주었다. 아버지 빨리 돌아오셔요.
▲12월 30일(화요일·눈)오늘 판문점회담이 열렸다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하느님, 저의 아버지를 빨리 돌려 보내주셔요. 나 하나가 희생하여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수만 있다면….
▲1윌 1일(목요일·맑음)오늘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새해 같지가 않다. 모든 사람이 엄마를 보고 많이 야위셨대요. 무척 가슴이 아파요. 아빠 빨리 돌아 오셔요.
▲1월 3일(토요일·맑음)만일 아빠가 영원히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어쩌면 나는 영원히 불쌍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 저를 구하여주셔요. 저의 아빠를 빨리 돌려 주셔요.
▲1월 10일(토요일·눈)오늘은 내가 태어난지 15년이 되는 날이다. 아빠가 계셨다면 참 즐거웠을 것이다. 아빠는 내 생일만은 잊지 않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선물도 많이 사주셨다. 작년에도 시내에 나가서 저녁을 사먹고 백화점에 들러 선물을 사주셨는데 참 섭섭하다. 아빠는 편히 계신지, 병이라도 나셨으면 어떡하나. 식사나 제대로 줄까, 편히 주무실까?
▲1월 12일(월요일·맑음)오늘아침 TV에 유병하씨네 가족이 나왔다. 나는 그 순간 놀랐다. 나는 무척 억울하다. 아빠가 납북된 것도 억울한데 협의를 뒤집어쓰다니 너무나도 억울하다. 누구한테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1윌 15일(목요일·쌀쌀함)아빠가 안 계신 우리집엔 음악이 끊어졌다. 마루에 놓인「피아노」에 먼지가 쌓인지 오래다. 겨울방학인데도 즐기는「스케이팅」도 할 수 없구나. 엄마는「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들려도 짜증이다.
▲1월 20일(화요일·맑음)하늘은 푸르기만하다. 북쪽의 하늘은 어떠할까? 파랗게 물들어 있을까? 아니면 먹구름이 온통 뒤덮여 있을까? 아빠는 무얼하고 계실까? 우리들을 생각하고 계실까?
▲1월 26일(화요일·맑음)개학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방학동안에 공부라곤 하지 않았다. 하고싶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안 계신데 공부는 해서 뭘해, 학교에 가서 애들을 만나면 난 우리아버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야지.
▲1윌 30일(금요일·맑음)구름이 떠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에 구름이 방해를 놓았다. 이것은 흡사 행복한 가정에 불행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집도 그렇다. 불쑥 공산당이 나타나 아빠를 멀리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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