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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보험보다 취업대책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동청은 71년도부터 실업보험제도를 실시한다는 목표 아래 실업보험법·실업보험 특별 회계법의 초안을 작성하여 올해 상반기 중에 법제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한다.
68년부터 종업원 2백명 이상의 각종 업체를 대상으로 실업보험제 실시를 위한 기초조사를 해온 노동청은 우선 71년에 5백명 이상을 고용하는 제조업체만을 대상으로 실업보험제를 실시하고 그 성과를 보아 보험 대상과 범위를 차츰 확대시키는 실업보험제 실시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한다. 동 계획에 따르면, 71년 초에 정부가 출자하는 3천만 원을 기금으로 특별합계를 두고 5백명 이상을 고용하는 제조업체 1백63개소 18만6천4백명을 대상으로 강제 가입시키며, 71년7월부터 보험금을 지급할 계획이라 한다.
노동청이 실업보험제를 실시하여 근로자로 하여금 실업의 공포에서 해방, 안심하고 근로에 임할 수 있게 하려는 근본 취지는 사회 보장제도가 전혀 무시되고 있는 오늘의 불건전한 재정 활동에 비추어 보아 원칙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노동 조건의 개선과 근로자 권익의 옹호는 그것이 근로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소망스러운 것이므로, 단계적으로 그를 위한 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실업보험의 실시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므로 정책의 선후 문제는 신중히 고려해야 할 줄로 안다. 우선 실업보험을 실시하기 전에 실업자 동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기실업자 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기취업자의 실업대책보다 정책적으로 우선되어야 할 것임도 분명하다.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69년 말의 실업자 수는 48만명에 불과하여 실업률은 4.7% 수준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것은 실업자의 개념 규정을 농간한 계수에 불과한 것이지 실지 실업률은 아닌 것이다. 1일 1시간의 유급 노동을 한 자를 취업자로 보는 취업자 개념을 적용시키는 상황에서 실업보험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쑥스럽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취업으로 어느 정도의 생계를 영위할 수 없는 취업자는 실질적으로 실업 내지 반실업 상태에 있는 것이다.
또 미성년자의 취업이 공공연히 행하여져 저임금에 의한 자본 축적이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자 수의 증가가 실업률의 감소를 뜻하는지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실업에 대한 개념 규정을 현실화시키고 난 후의 실업자 통계를 우선 마련하고 실업 대책을 세우는 것이 순서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실업보험제도는 재정 대금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며 가입자나 고용주는 형식적인 기여에 그쳐야 그 본래의 취지가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금 3천만원으로 실업보험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업보험제도라는 미명하에 근로자와 고용주의 부담을 가중시켜 내자 동원에 기여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기금 3천만 원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이다.
끝으로 실업보험금 지급액은 정액 「베이스」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종래의 여타 보험금이 그러했듯이 가입시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금액이었지만, 물가상승으로 보험금 지급시에는 푼돈이 되어 가입자만 희생되는 경향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도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업보험이 여타 보험과 마찬가지로 가입자의 희생만 강요할 정도로 미약한 것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의 실정으로 보아 실업보험제도의 취지가 훌륭하기는 하지만 취업자의 실업대책으로서 유효한 실업 보험제도가 마련되기는 어려운 것이라 할 것이며, 특히 재정 부담을 크게 각오하지 않는 실업보험제도는 오히려 취업자에게 쓸데없는 부담만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또 지금의 실업률로 보아 취업자의 실업대책보다는 실업자의 취업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며, 실업보험 부담 비용을 취업 기회 확대를 위한 기술 훈련비용에 투입하는 것이 보다 현명하지 않을 것인가 판단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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