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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유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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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일은 구정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정을 지내는 국민은 전 인구의 3분의2나 된다. 적어도 2천만명이 이날은 명절로 즐기는 셈이다.
정부가 구정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적은 없다. 평일이나 다름없이 친다. 다만 철도편의를 예년대로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반승낙으로 칠 수는 없다. 적어도 공휴일은 되어야 명실공히 설날기분이 들것이다. 굳이 「설날」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명칭이야 어떻든 3분의2나 되는 국민이 기리는 이날을 사무적으로 냉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구정을 백안시하자는 측의 주장은 있다. 추석이다, 신정이다…이런 명절이 지날 때마다 국민의 가수요는 50억원으로 늘어난다고 말한다. 가령 「크리스머스」에, 신정에, 구정까지 겹치고 보면 무려 1백50억원의 생돈을 국민들은 한 두 달 사이에 소비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럼직도 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 만큼 자금회전이 빨라질 경우의 이득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이 국민에게 모두 분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달리 생각하면 국민들이 그 덕에 새 옷가지라도 걸칠 수 있고, 기름진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이것이 부덕이고, 이것이 낭비이며, 이것이 망국풍조라고 타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소시민들의 울울한 마음들에 주는 위안감은 그지없이 귀중한 것 일수도 있다.
요즘과 같은 핵가족 시대에 조상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은 날로 시들해간다. 더구나 국민의 평균수명은 해마다 늘고 있다. 71년도엔 무려 66세로 늘어나리라는 공식 전망도 있다. 바야흐로 노인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평균수명과 노인에의 공경심이 반비례하는 풍조는 고소를 자아낸다. 평균수명의 연장이 노인에겐 고독과 소외를 뜻하는 것이라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구정을 「노인의 날」로 지내는 「아이디어」는 어떨까. 하긴 매월이 「노인의 날」이라면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이런 궁여의 책까지 생각하는 현실은 오히려 쓸쓸하고 어설프다.
신정과 같이 연3일의 연휴는 곤란한 것이다. 그럼, 2월의 첫 토요일이거나, 아니면 구정이 있는 주일의 토요일을 이날로 정하면 적어도 연 2일의 휴일은 얻을 수 있다.
지금처럼 공휴일도, 반공일도, 그렇다고 정상일도 아닌 엉거주춤한 하루는 뜻이 없다. 어느 직장이나 일손들을 놓고 서성대는 풍경은 더욱 어색하다.
문제는 서민적이고, 생활풍습에 익어온 그 세습을 뚝딱 걷어치우기는 힘이 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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