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역사를 잊지 말자, 우리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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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6월과 정전일(7월 27일)이 있는 7월이 길었던 장마와 함께 지났다. 이번 주부터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 문득 지난달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과 통화하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제 8월이다. 사람들이 6월, 7월에만 반짝 관심을 보여 처음에는 답답했다. 이제는 답답한 마음도 들지 않을 만큼 지쳤다. 평소에 왜 그렇게 6·25전쟁에 대해 무관심한 건지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건’을 기념하고 되새겨보는 일은 일회적일 수밖에 없다. 1년 365일 동안 기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탓이다. 매년 그날을 잊지 않고 뜻을 이어서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6·25전쟁은 그렇게만 다루기엔 의미가 남다른 듯하다.

 6·25전쟁은 공산권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만큼 희생도 컸다. 3년간의 전쟁 동안 국군 13만여 명이 숨졌다. 유엔군, 중공군, 민간인 등 다른 희생자들까지 합치면 총 250만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의 결과로 한반도는 피폐화됐다. 그런 한반도에서 남한은 3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영국 ‘더타임스’는 “쓰레기통에선 장미가 피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버지 세대는 장미 다발을 피워냈다. 하지만 성장에만 신경을 쓴 사이 돌아보고 새겨야 할 성장흔(痕)마저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모양새다.

 현재 한국에서 6·25전쟁은 박제된 역사다. 1년 중 현충일과 6월 25일, 정전일 등 손에 꼽을 만큼의 날에만 6·25전쟁을 돌아본다. 장소는 현충원과 용산 전쟁기념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 이외에 어느 장소에서도 우리는 6·25전쟁을 느낄 수 없다. 이렇다 보니 20대 이상 남녀 절반 이상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한 것이 당연하다(한국갤럽 여론조사).

 당사국인 한국이 일상에서 외면하고 있는 6·25전쟁은 정작 참전국들 사이에서 공산권의 확장을 막기 위해 희생했던 영광스러운 상징이 돼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개선문 광장에 있는 6·25전쟁 참전비 및 기념동판이다. 프랑스인은 대형 축제나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기를 들고 개선문 광장으로 몰린다. 그만큼 개선문 광장은 그들에게 중요하고 특별한 곳이다. 1년 365일 6·25전쟁 참전비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무심히 광화문 광장을 스쳐 지났지만 어디서도 6·25를 느낄 수는 없었다. 1년 중 며칠만 기념하는 것을 넘어 일상 속에서 역사인식의 중요성만이라도 인식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그렇게 되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누구의 도발이었는지 헷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이미일 이사장의 말이다. “얼마 전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 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대형 걸개로 걸렸더라. 저게 과연 일본만을 향한 문구일까. 보면서 마음 한편이 꽉 막힌 듯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노진호 사회부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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