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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세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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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균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상황은 전율을 자아낸다. 이것은 상도의의 문제를 넘어 인간양심의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누구나 돈으로 세균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면 공포의 전염병은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이런 일은 전연 개인적인 원한이나 정신 이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이때 사회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어떤 집단과 타국과의 사이에 일어난 그 상거래는 더욱 충격적이다. 마치 국가수립의 목적이 「달러」의 획득에만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것은 한 국가의 국제적 인격과도 관계된다. 분쟁국의 이웃에 있는 제 삼국이 적대국 사이의 증악감에 끼어 들어 장사를 하는 예는 세계 사상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상품이 전염성 세균인 예는 없었다. 국제도의는 문명의 진보와 함께 날로 전락만 하고 있는 것인가.
북괴가 일본에 발주한 세균은 탄저균, 「페스트」균, 「아시아·콜레라」균, 천연두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콜레라」균은 적당한 기온 하에서는 우물물에만 풀어놓아도 발병할 수 있다. 탄저병은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과목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병이다. 사과·복숭아 등에 암갈색의 반점이 생기며 썩어 들어간다. 소·말 등 가축은 사료를 통해 이 균을 먹으면 하혈이 심해 쓰러지고 만다. 인간에게도 물론 그 병은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 나라에서 신종「콜레라」가 만연했을 당시 어떤 학자는 그 발생지가 점조직으로 되어 있는 것에 깊은 관심을 보였었다. 「콜레라」균은 그 전염성으로 보아 마땅히 선조직식으로 연결되어 퍼지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것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지역에서 점처럼 발생하곤 했었다.
이것은 북괴의 세균 발주와 함께 우리에게 새로운 의혹을 준다. 북괴의 수중에 상당량의 세균이 들어갔다면, 언제 어디서 무슨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른다.
세균오염에 의한 전략은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닉슨」미국대통령은 지난해 가을 화생무기의 폐기를 선언했었다. 그와 같은 전략은 인간의 가장 저열한 간악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이와 같은 세균을 배양하고 있는 곳은 동경대 응용 미생물 연구소와 국립 미생물 연구소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세균 배양은 세균의 멸살을 위한 것이지 그것의 상품화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과학자들은 한인간의, 그리고 과학자의 양식으로서 북괴의 유혹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넘는 인간의 긍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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