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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영화에 일대 혁신 [누벨·바그]운동 12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후영화문법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누벨·바그]운동(프랑스의 새물결운동)이 금년으로 12년을 맞이한다.
1958년에서 59년에 걸쳐 파리에서 상연된 5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영화사적인 연쇄반응을 전세계에 파급시켰다.
[클로드·샤브를]([사촌]) [알렘레네]([히로시마]), [프랑솨·트뤼포]([4백타]), [장·뤼크·고다르]([숨이 차서])가 그 주역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은 전후 이탈리아와 미국영화에 짓눌려 지내던 프랑스영화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큰 몫을 했다.
영화의 질을 상업성보다 앞세운 이들은 [영화수첩]지를 중심으로 왕성한 이론투쟁을 먼저 전개했었다. 평론가 [스잔·손타크]가 현대를 사는 최대의 영화감독이라고 극찬하고 있는 [고다르]는 이렇게 회고한다.
상업주의 영화를 향해 가차없는 포문을 열었을때 [카루] [콜루조] [클레망] [델라노이] 등 프랑스 영화계의 거물들이 차례차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나가 떨어졌다.
이 젊은 세대의 반항이 성공한 것은 그들의 이론이 백열처럼 순수한 강도를 과시한 탓도 있으나 미학과 윤리적인 양면작전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TV와 다를 것이 조금도 없는 따분한 영화의 미학적인 허위를 고발(터무니없는 해피엔딩의 남발)하는 한편 사무원들처럼 영화감독이 근무시간과 돈만 버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예술정신의 해이를 규탄했다.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이원론적인 구세대의 정신구조에 대한 반역이었다.
예술을 하나의 사고양식이라고 믿은 [누벨·바그]의 이론가들은 [펜]에서 곧 [카메라]로 작업도구를 바꿔치우는데 있어 하등의 이질감을 안느꼈다.
[영화를 놓고 토론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결국 어떤 방법을 찾아내놓고야마니까. 그것은 곧 당신의 미학일 수 있다.](샤브를)
[누벨·바그]의 방법은 보다 리얼하고 역동적인 것을 매우 적은 제작비로 화면속에 담는 비결이었다. 아마추어의 이용, 자연공간의 이용, 클로스업의 활용, 그러다보니 가공과 현실의 관계를 새로 정의하려고 든 그들의 카메라에 잡힌 것은 그때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도 리얼한 세태요 시대상이었다.
[누벨·바그]는 또 [히치코크] [오슨·웰즈]와 같은 그들이 존경하는 대가의 작품에서 곧장 [신]을 인용한다. 새물결운동, 이것은 곧 영화의 자유화운동이었던 셈이다. 12년이 지난 지금 [트뤼포]와 [샤브를] 등은 상업영화제작으로 복귀하고 기성세대가 됐다.
그러나 1960년에 제작된 1백62편의 [누벨·바그]영화 가운데 [무모한 사랑](자크·리베트작)이 최근에 공개되고 있는 등 그들의 영향은 아직도 확대일로에 있다고 봐야한다. 새물결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할리우드의 정치가들이었다.
[고다르]는 [메이드·인·USA] [남자같은 여자] [유부녀] [경멸] [내가 살아야 할 목숨] [여자는 여자]등 그의 영화를 한자리에 묶어 편리한 상표를 붙여줄 겨를도 없이 2∼3개월에 한편씩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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