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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가능성 보여준 구어체 … 난해해도 타협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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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행숙 시인은 시를 쓸 때는 수동적인 몸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부의 것에 붙들릴 수 있는 수동적인 상태에 시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0년대 한국 현대시에서 김행숙(43)의 존재감은 독보적으로 평가된다. ‘미래파’로 지칭되는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젊은 시인을 언급할 때 그의 이름은 맨 앞자리에 놓인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김행숙으로부터 시작돼 김행숙으로 흘러들어간 시적 변이는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됐다”고 평할 정도다. ‘김행숙론’으로 등단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초기에 비해서 가독성이 커졌다고 하지만 난해시의 대표주자답게 그의 시는 여전히 읽기 어렵다.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정원 앞에 선 기분이랄까. 난해시라 불리는 시를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감정이든 생각이든, 보는 것이든 느끼는 것이든 정확하게 쓰고 싶어요. 언어는 너무 성겨서 정확한 표현이 안 돼요. 말은 분절된 것으로 연속된 표현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고 싶거든요. 산술적인 정확함은 아니더라도.”

 그러며 김수영의 시론에 등장하는 ‘정확한 미지’를 언급했다. “시인이 다 알고 쓰는 건 아니지만, 뭔지 모르지만 이것 말고는 아니라는 내적 확신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것을 안에서 뭉개거나 미적으로 타협하고 싶지는 않아요.”

 성긴 언어의 한계 때문일까. 그의 시에서는 여백이 많이 느껴진다. “말이든 사람이든 진동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 듯해요. 사이와 틈, 그곳이 무성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와 언어 사이에 미묘하게 충돌하고 움직이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요.”

 대화체나 고백체가 등장하는 그의 시는 낯설다. 예심위원인 권혁웅 시인은 “김행숙은 시에서 고백체와 대화체 등 구어체를 구사하면서 우리말의 가능성을 열어젖혔고 이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첫 시집에서 특히 구어체를 많이 썼는데 그때는 그렇게 나와서 그렇게 쓴 거에요. 그런 문체에 집중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기에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도 부담스럽지 않다. “실험에 대한 강박은 없어요. 시가 시를 밀고 가는 부분이 있으니. 내 안에서 스스로 지겹지 않고 내 세계가 나에게 덜 익숙했으면 좋겠어요. 내 안에서 내 말이 쉬워지고 익숙해질 때가 경계해야 할 때죠.”

 관계를 파고들었던 그는 요즘 시간에 관심이 많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인간의 시간’)과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세계의 차원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 친구여, 식물세계에서 약을 찾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밤잠이 줄어드는, 점점 줄어들어서 언젠가 없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하는’(‘연못의 관능’ 중) 등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엿보인다.

 “물리적인 시간의 중요도보다 인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윤동주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와 닿아요. 사람과 타인을 사랑하는 건 어렵지만 죽음을 놓게 되면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무엇인가를 찾는 이야기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이야기가 같은 이야기라면’처럼 모순의 공존에 대한 언급도 시에서 자주 등장한다.

 “모순의 공존이 인간인 듯해요. 시는 이분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비스듬한 차이를 말하는 거에요. 다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소한 차이 같은 걸 말하는 거죠.”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행숙=1970년 서울 출생. 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문학에세이집 『에로스와 아우라』.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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