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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180년...불단두대는 퇴역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공포와 잔학의 대명사같은 「기요틴」(guillotine)이 20세기후반에 이르러서야 여론의압력에 현구(형구)의 현역에서 물러나야할 운명이다. 「프랑스」 역사에악명을떨친지 꼭1백80년만에-.
「파리」 「상트」교도소의 엄중히 자물쇠를 채운 창고안에 날카릅게 날을간 도끼날을 담은 은색 상자하나와 두꺼운 나무기둥 몇 개 광주리 하나등이 쌓여있다. 이것을 제대로 맞추면 유명한 「기요틴」(단두대)이된다.
「기요틴」은 아직도 「프랑스」의 법적인 사형기구이다. 군인들만이 처형될때총살형을 받을수있다.
「기요틴」은 「프랑스」 혁명당시 해부학교수이인 「조제프·이나스·기요틴]이 발명한것으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잘못전해진것이고「기요틴」의사용을 국민의회에 권장한것뿐이었다. 「기요틴」자신도 「기요틴」아래 목읕잃었다는 이야기도 와전된것이다.
「기요틴」은 정치적이유로 잠깐동안 감옥에 들어간일은있지만 사형을 당하지는않았었다.
1792년 「로비아스·슈미드」라는 「피아노」 공이 만드는 이기계가 「기요틴」자신및 동료들이 참석한가운데 시체3구를 갖다놓고 그능률을 시험하게되었다. 기계의 성능이 기가막힌것으로 나타나자 동료들은 「라·기요틴」이라는 별명을 붙여버렸다. 「기요틴」자신은 기를쓰고 반대를했으나 이 이름은 그대로 굳어 바로 「공포」의 대명사가되었다.
이러한 「기계」 는 당시날리던 망나니인 「샤를·상송」의 마음에는 들지않았으나 「공포정치」의 치하에서는 죽일사람이 하도많아 「스피드」와 농률이면 그만이었다.
「기요틴」에의한 공개처형을 못하게된것은 극히 최근의일로 신문이 들고일어선 때문이었다.
1939년 부유한 과부를 죽인 「외젠·와이드망」이라는 청년이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집행인인「앙리·데푸르뇌」가 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끼를 세번이나 떨어뜨리지않으면 안되는 처참한 광경이벌어졌던 것이다. 【AP동화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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