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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랜드마크를 평당 500만원에 "현지 정보망과 빠른 결정 덕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욕 월가 습격사건’ ‘금융위기를 활용한 통쾌한 역발상 투자’. 금호종합금융의 뉴욕 AIG 본사 건물 매입은 2009년 5월 당시 일대 ‘사건’이었다. 해외 부동산 직접 투자가 생소했을 때 중견 금융회사가 뉴욕의 랜드마크 빌딩을 산다는 발상 자체가 그랬다. 인수금액도 충격적이었다.

본관과 별관을 합쳐 연면적 12만6090㎡의 이 빌딩을 금호종금은 1억5000만 달러에 샀다. 당시 환율(달러당 1250원)을 감안해도 한 평(약 3.3㎡) 매입가가 490만원대에 불과했다.

금호종금은 2년여 만에 이 빌딩을 모두 2억6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매입 부대비용을 제외한 단순 수익률은 77%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의 강형구·전상경 교수팀은 최근 이 빌딩 투자건을 분석해 보고서를 냈다. 국내 해외 부동산 직접 투자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이 투자에서 두 교수가 뽑아낸 교훈을 정리해 봤다.

1. 현지 네트워크가 핵심

해외 부동산 투자는 현지에 얼마나 역량 있는 파트너를 두고 있는지, 파트너와의 신뢰관계는 어떤지가 성패를 가름한다. 시장 정보를 실시간 파악할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파트너의 정보력과 협조가 절대적이다. 금호종금의 경우 2007년부터 뉴욕 부동산 시장의 투자 기회를 노렸고, 부동산개발업체 영우앤드어소시에이츠(YWA)사를 통해 AIG 빌딩이 매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얻었다. 당시 부사장으로 빌딩 매입을 주도했던 이종성 현 새영RND 대표는 “2년 가까이 현지 시장을 조사했던 터라 매물이 굉장히 싸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며 “현지 파트너가 있더라도 관심 지역에 대한 분석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2. 결정은 신속하게

AIG 빌딩 투자에서 가장 빛났던 점은 타이밍이다. 금호종금이 “AIG가 매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접한 게 4월 말. 실무진은 일주일 만인 5월 초에 뉴욕을 방문해 이틀간 빌딩을 둘러봤고 바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당시 투자 실무를 총괄했던 김용찬 금호종금 이사는 “좀 더 규모가 큰 금융회사였다면 투자위원회를 열고 분석기관에 자문하느라 인수의향서 제출시간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라며 “중소회사의 강점을 살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한 덕에 계약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3. 장기 투자로 안정적 출구를

성공한 투자로 꼽히지만 시장에선 “조금만 더 오래 보유했으면 훨씬 더 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금호종금이 건물 매입을 위해 조성한 펀드 규모는 2400억원. 건물 가격에 매입 비용을 합쳐서다. 30여 곳의 기관에 지분 투자를 제의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1400억원을 대출로 메웠다. 대출 만기는 3년, 빌딩을 담보로 잡고도 연 11%대의 고금리를 내야 했다. 금호종금 관계자는 “고금리에다 만기(滿期) 압박 때문에 시세가 더 오를 거란 걸 알면서도 서둘러 판 게 사실”이라며 “지금은 빌딩 시세가 우리가 판 가격보다 50%쯤 더 오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강형구 교수는 “워낙 좋은 조건에 매입해 서둘러 팔았어도 많은 차익을 내긴 했지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투자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4. 평판 관리도 전략

투자자 모집이나 애초 계획했던 주거용 빌딩으로의 개발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금호종금이나 현지 파트너사인 YWA, 국내 파트너 운용사인 마이에셋이 모두 국내외 평판(reputation)이 부족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특히 해외 빌딩 매입이 생소하던 2009년엔 전략적으로라도 대형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상경 교수는 “해당 건물을 당장 팔지 않고 대형 건설사와 손잡아 주거용 빌딩으로 개발했다면 거기서 얻는 이익은 엄청났을 것”이라며 “투자 주체의 명성에 얽매이는 국내 업계의 오랜 투자 관행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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