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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빽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빽줄은 고무줄로 통했다. 일정한 힘줄없이 잡아당기면 늘어났다가도 늦추면 오무라드는 성질 때문이다. 그 빽줄의 신통력이 항상 탈이었다.
몇해전 서울M구S동의 땅값이 시세를 만난듯이 오른때가 있었다.
가랑비만 내려도 진탕이 되던 한길이 며칠사이 말끔히포장이 돼버렸기 때문.알고보니 그 동네에 살던 K씨가 시의 고위직에 오른 덕분으로 동네입구 10m 도로폭이당장 포장이 됐던것.
빽만 좋으면 아무리 높은언덕배기라도 상수도를 끌어들일수 있고 도시계획선마저 변경시킬수 있는것으로 생각할이만큼 빽은 지금까지 눈에거슬리도록 곧 잘 분별없는 작용을 해왔다.
S시경에서는 비교적자리가 좋은곳으로 알려진××단속반근무 형사 K씨를 『1억윈짜리형사』 라부른다. 그의빽이 K형사를단속반에 앉히게한 대신 예산심의때 1억원규모의 어떤 시설비를 통과시키는데앞장 서주었다는 소문으로 불려진 「니크 네임」 이었다.
고관 B씨가 서툴게 배운자동차 운전면허시험을 칠때의 일. 그의 운전솜씨는 누가보아도 「갈짓자」 의 교습미달권에 들어있었다. 그가 실습시험을 끝마치자 시험관은 여러응시자가 보는 앞에서 유난히 큰소리로 『불합격』하고 외치며 『쾅』 찍은「카드」를 넘겨주었다.
창피막심한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B씨는 슬그머니 손에 쥔「카드」를 펴보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시험관이 『불합격』 이라고 내어준「카드」가 사실은 합격증이었기때문. 빽은 이렇듯 때에따라 기발한 둔갑술을 부리기도 한다.
특히 빽은 개인회사이거나 관청에서나 승진과 영전의 자리에 가장 속효력이 있는것으로 인식되어왔다. 하루아침에 ××공사의사장자리에 오른 고위직으로부터 아래로는지방공무원의 말단 서기직에이르기까지 빽줄은 바로 직장생활의 밥통줄에 맞먹는것으로 여길만큼 심각한 풍조로 굳어져 왔다. S시 경관내의 M,J,L,Y파출소장 자리는 서장들도 깔보지 못한다는 「노른자위」.
K씨는 이 「노른자위」 L파출소와 Y파출소를 과거 10년동안 시계추모양 왔다갔다 자리바꿈만하다 실속있게(?) 퇴직했다. 그때 동료들은 그를두고 『빽덕을 단단히본 행운아』 라고 부러워했을정도였다. 공정성을 신조로 삼는다는 법관의 인사에도 한때 『빽좋은 사람은 추풍령을넘지않는다』 는말이 떠돌만큼 빽이 작용되고있다고 소문났었다. 서울과 지방과의 인사교류원칙이 6개윌로 되어있기 때문에 빽좋은 사람은 그기간동안만 의정부·수원·인천등 서울의 외곽도시에 근무하면 다시 서울로 들어올수있다는 인사의 예를두고한말이었다.
그러나 빽줄이 오히려 평지풍파의 변덕을 부린예도 없지않아있었다. 경찰간부의 C씨는 총경에서 거뜬히 경무관으로승진, 일약K도경국장으로 영전되었으나 그 미덥던 빽줄이 끊기자 자리를떠나야할 처지에놓여 끝내 사직하고만 일이있다. 자리를 옮길때마다 처남을 비서관으로데리고 다녔던 모장관의 경우 장관자리를 내놓게되자 그의처남은 금새실업자의 신세를 겪게되었다. 차라리 빽이없었던것만 못한 실례이기도했다.
심지어 점심때 도시락을 공급하는 도시락장사 아주머니는 수위영감에게 빽을 써야만 정문출입을 할수있었고 청소부 취직자리 하나 얻으려도 빽없이는 얻을수없는 풍조가 어느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서울지검의C검사는 『피의자들 조사하다보면 하잖은절도전과자에게까지 빽이 작용하는것을 볼수있다』고 말하면서 빽의위력을 개탄해마지 않았다.
빽의 영향으로 공정한 인사관리가 어그러질때 근면하고 성실한 봉사의욕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의타심만 낳게한다. 또 빽이권력으로행사 될때 질서는 망가지고 공신력은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다.【김영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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