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주주의 고향˝에 「자유」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대문명과 민주주의의 발상지 「그리스」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번 탈바꿈을 해야만했으나 그정정은 아직도 복잡다단하다. 지난 67년 한햇 동안에 두 번이나 「쿠데타」 치르고 겨우 정권을 잡게된 「게오르기·파파도풀로스」장군을 수상으로 하는 군사정권은 과연 민주국가의 대열에서 「그리스」를 번영으로 이끌어나갈지, 아니면 「그리스」내에서 국민의 자유를 말살하는 독재정권으로 끝날는지 중대한 고비에 있다.
대부분이 대령급 육군장교들로 구성된 현군사정권이 부정과 부패를 막고 공산주의위협에서 나라를 구한다는 대의로 정권을 인수한 것은 1967년4월21일 이었다. 60년대에 접어들어 「그리스」에는 획기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쿠데타」 악순환>
64년 총선거에서 여당인 국민급진당을 압승하고 중앙동맹은 신내각을 구성했으나 정정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결과 67년초 육삼군모장이었던「스핀지가키스」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쿨리아스」검찰총장을 수반 로 군사정권이 들어앉았다. 그러나 의회의 정당활동이 중지되고 6천여명의 정치가들이 체포되는 등 혼란한 틈을 타 국왕「코스탄틴」2세가 군사정권을 전복하려 역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군부에서 새로운 실력자로 나타난 「게오르기·파파도풀로스」장군에게 좌절되었고 「파파도풀로스」는 「콜리아스」내각을 해체하여 스스로 수상 겸 국방상에 취임, 신군사정권을 수립했다.
1944년 독일군부가 「그리스」에 축출되자 격화된 공산「게릴라」들의 활동으로 민간인 4만7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9년「그리스」국민들은 미국의 지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의 「게릴라」활동을 제압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미국과 「그러스」는 우의가 두터워졌다. 그러나 아직 공신세력의 뿌리가 남아있는 「그리스」이다.

<걸핏하면 교수파면>
신정권이 들어선 직후 「사로니카」대학교수 중 3분의1이 파면되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발견되면 「불법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교수들의 파면이유였다.
「아테네」대학이나 「사로니카」대학에는 학생경찰정보원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이들은 호기심에서 아니면 월16「달러」정도를 받는 재미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자행되고있는 독재는 유별난 것이어서 현정권에 어떤 식으로 대항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8명의 작가들이 「그리스」에서 이미 자유가 죽어버렸다고 선언했을 때 3명이 검찰에 불려갔으나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식으로 이상할이만큼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연기할 자유도 없고>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여배우 「안나·시노디노」양이 연기의 자유마저 없어졌다고 은퇴했을 때 경찰서장은 그녀를 불러 하나의 인간으로는 존경한다고 말했으나 정부관리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수상「게오르기·파파드로」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조객41명이 선동적인 구호를 외쳤다고 체포되었다.
「파파도풀로스」수상이 매일 아침관사에서 사무실로 출근할때엔 「그리스」 군사정권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수상을 태운 자동차가 5분간에 걸쳐 통과할 연도변에는 3백∼4백명의 경찰관들이 모든 교통을 차단한 채 삼엄한 경비를 한다.
「아테네」에서는 비밀도청장치가 많아 시민들은 전화로 상품들을 주문할 때 「호텔」에서 하지않고 가계에서 하는 일이 많다. 왜냐하면 전화로 대화가 조금만 빗나가도 「체포」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년층은 「그리스」가 독일군에 점령당하고 있을 때처럼 행동한다.

<전화「체크」일쑤>
수상은 자주 『「그리스」는 민주국가라고 말하고 있으나 언론은 통제되고 선거, 파업, 정당, 독립적인 사법부가 없는 곳이 이 나라다. 「그리스」국민들은 미국 CIA가 현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있다.』
미국정보기관은 최근에 1천2백 건의 전화 도청 건을「그리스」정부에 넘겨주었다.
정보장교출신이고 CIA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있는 「파파도풀로스」수상은 동료들이 「그리스」의 「나세르」라고 부르고 있으나 과연「그리스」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의문이다. 【하퍼즈 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