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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광동제약 창업주 최수부 회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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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황청심환’으로 한방 과학화에 앞장서 온 광동제약 창업주 최수부(사진) 회장이 별세했다. 77세.

 휴가 중이던 고인은 24일 강원도 평창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즐긴 뒤 라커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고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온 고인이라 그의 별세 소식은 제약업계에 충격으로 전해졌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우황청심환의 원료인 사향을 손수 골랐고, 비타500 개발 당시에는 직접 맛을 보며 개발에 참여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고인이 직접 챙기는 최고경영자(CEO)였다. 그의 인생은 ‘최씨 고집’ 하나로 펼쳐온 ‘뚝심경영’으로 요약된다.

 그의 뚝심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일만 했다. 1936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5남2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12세 어린 나이에 아홉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됐다. 나무를 베다 팔기도 하고, 돈벌이가 된다면 가리지 않고 장사를 했다. 일본인 친구들이 ‘조센징’이라고 부르자 검도용 호신도구를 휘두르는 바람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학력으로는 번듯한 직장을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어렵사리 경옥고를 파는 제약회사의 외판원으로 들어가 제약사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다녔고 담배도 제일 싼 파랑새를 피웠다. 두 달에 한 번은 구두 밑창을 갈아야 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한다. 3년 만에 300만원을 모았다. 이 돈을 종자돈 삼아 1963년 광동제약사를 설립해 경옥고를 직접 생산했다. 하지만 광동을 세상에 널리 알린 제품은 쌍화탕이었다. 75년 서울신약이라는 회사를 사들여 쌍화탕을 만들었다. 다른 회사 제품값의 두 배인 100원에 시판했다. 직원들은 너무 비싸 팔리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품질이 좋으면 비싸도 산다”고 직원들을 설득하고 직접 TV 광고에 출연했다. 광동쌍화탕은 출시 첫 달 30만 병이 팔리며 ‘히트상품’이 됐다. 약사들이 감기약을 제조해주면서 광동의 쌍화탕을 붙여 팔았다. 광동쌍화탕은 지금도 쌍화탕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쌍화탕의 질주에 힘입어 탄탄대로를 달리던 최 회장은 98년 외환위기 때 회사존폐 위기에 몰렸다. 경쟁업체인 C사와 우황청심환 시장을 놓고 과당 경쟁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그해 4월 갑작스럽게 돌아온 어음 32억원을 막지못해 1차 부도를 냈다. 최 회장이 직접 뛰어다니며 최종부도는 간신히 틀어막았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때 만든 게 바로 마시는 비타민C ‘비타500’이었다. 비타500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고, 옥수수 수염차를 히트시키며 음료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제주 삼다수 유통까지 맡게됐다. 김연판 한국제약협회 상근 부회장은 “최 회장은 제약산업 성장의 산증인이자 큰 어른이셨다”며 “우직하게 도전하는 청년의 삶으로 후학들에게 큰 교훈을 주신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유족은 부인 박일희씨와 아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등 1남 4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8시30분이다. 3010-2631.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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