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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이라는 증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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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의 형법이 갖고있는 최상의 미덕은 증거제일주의이다. 누구든 그「증거」가 없는한, 결백을 주장할수 있다. 이른바 완전범죄는 그 미덕의 허점이기도 하지만, 법은 그렇다고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법의 근본 정신은 어디까지나 선의를 보호하려는 쪽이지, 악의를 처벌않으려는 쪽은 결코 아니다. 「완전범죄」의 묵인(?)은 어쩌면 민주주의의 애교인것도 같다. 고의이든, 아니든 그것엔 어쩔 도리가 없는것이다. 설령 범인이 스스로 진범임을 자백해도 그것만으로는 처벌의 근거를 삼을수 없다.
그때문에 오늘의 수사관들은 침방울 한점, 머리칼 한오라기에도 온갖 신경을쓴다. 그것만이라도 방증을 삼으려는 수사관들의 「라스트·스트로」(마지막 지푸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그 증거제일주의의 정신을 각인해놓았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강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때』(제10조6).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할수 있다. 그 뿐이아니다.
설령 『자의로 진술한 경우』라도 헌법은 또하나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인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수 없다』(제12조6). 실로 『권리의 만세』이다.
피고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권리가 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그것이다. 누구의 범죄이든 그것이 범죄로 확정되기 전에 함부로 공표할 수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죄로 성립이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권리는 형법에도, 소년법, 가사심판법에도 엄연히 규정되어 있다.
최근 전주 연속화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소년의 경우는 좀 의아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비록 신문인의 윤리감에 의해 눈을 가리어졌을 망정 그 소년의 적나라한 모습이 세상에 알려졌다. 심지어는 일기장까지도 살피고 현장검증까지도 공개되었다. 이경우, 소년의 인격은 어떻게 보호될것인가.
더구나 그 소년의 범행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해줄 증거는 아직 확실히 수집되지않았다. 기소가 유지될지 안될지 조차의문이다.
수사당국은 범죄의 추적에만 너무 급급하고 있지나 않은가. 성인답게 한발 물러서서 이성있는 수사를 할수 있었던들, 그소년의 이름과 신분과 얼굴과 가족관계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음직도하다. 법의 선진국에선 이와같은 관용이 자랑스럽게 유지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소년의 인격보호에 깊은 관심을 쏟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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