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의 어떤 미안한 이야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2호 30면

얼마 전 심혈관 관련 정기 검사를 받아야 했던 날, 채혈을 하고 난 후 병원 근처 국밥집에 들렀다가 옆 테이블에 앉으신 원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년 후 피보험자 신분이 되어 아들이 근무하는 대학의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하셨다. 요즘은 강의를 언제 하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서 강의는 안 하려고 해요.”

미소를 띠셨지만 농담하신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의 연구 경력은 흠 잡을 데가 없다는 정평이 나 있건만, 재직 때의 강의가 충실하지 않았다고 자조하시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그동안 쓴 글 가운데 오류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히 석사 마치고 학회에 데뷔한 논문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삼종숙 이승훈에게 연좌되어 김해로 유배 갔던 이학규의 한시에 관한 논문이었다. 조교 월급 두 달 분인가를 지불하고 일본 텐리(天理)도서관에서 자료를 구해 와서는 고전 관련 논문으로서는 처음으로 타이프로 논문을 작성했다. 시의 제목이나 논문 제목도 실험적으로 붙였다. 그런데 최근 이 사람에 대한 논문이 많아지자 내 스스로 내 논문의 허점은 없었나 불안하게 된 것이다.

이학규는 유배지 김해의 풍속을 세세하게 묘사했는데 ‘뱃길을 가며, 전편’ 제12수 첫째 구에 ‘두염천곡저연성(頭鹽千斛抵連城)’이라 했다. 두염은 염전에 종사하던 염정이 사용하던 말로, 마지막 소금을 미염(尾鹽)이라 하는 것에 상대된다. 당시 이 구절을 “첫 소금 일만 말을 성으로 들여가니”라고 풀이해두었다.

이것은 오역이다. 저연성(抵連城)이란 연성벽(連城璧)의 값어치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왕이 화씨벽이란 보물을 얻고 싶어서 조(趙)나라 왕에게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제안했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저연성’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됐다.

20대의 논문이었으니 눈 감자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오류를 자각한 날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편치 않다.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봉당의 먼지를 쓸고 쓸더라도 먼지가 또 나오듯 오자가 발견된다. 학술상을 받을 때 앞으로 오자와 오류가 없는 책을 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고백한 적도 있다.

여기까지는 내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다. 지금부터가 시사 이야기라면 시사 이야기다.

최근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는 논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있다.

지난 2000년대 초 국가의 정보화 사업과 학술연구 기관의 ‘반’ 강요로 거의 모든 학회들이 학회지에 실린 논문들을 PDF로 읽을 수 있게 해 두었다. 하지만 저자의 동의를 받은 학회는 그리 많지 않다. 앞서의 내 논문도 인터넷으로 검색이 될 터인데,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정보화부터 서두를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수정한 논문을 실어달라고 원하면 수정 원고를 받아 인터넷상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라면 ‘거짓말’ 했다는 자괴감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IT 강국이라는 허명에 도취해 있으면서 우리는 놓친 것이 있다. 정보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내 전공과 관련 있는 글로서 인터넷에 떠도는 것들을 보면 참혹할 정도다. 세종대왕의 한시라 전하는 ‘몽중작(夢中作)’의 경우 내가 신문 칼럼을 이용해 ‘다황(多黃) 운운’이 아니라 ‘다경수운유적루(多慶雖云由積累)’가 옳다고 지적했거늘 인터넷상에서는 여전히 ‘다황 운운’이 우세하다. 만일 학회의 PDF가 일반 사이트에 올라오게 된다면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너무 서둘렀다. 학술연구 기관은 학회마다 양질의 자료를 확보하도록 유예기간을 주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정 자료를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내 분야에 한정해 말하면, 정보의 질은 우리나라가 결코 IT 강국이라 할 수가 없다. 슬프지만 편견은 아닌 것 같다. 젊은이들이 오류 많은 논문을 인터넷상에서 검색해서 찾아내어 자신의 논문에 이용하고 그것이 다시 인터넷상에 올라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속이 쓰리다.

자기반성을 해야 할 판에 학회의 행태와 정보화 사업을 비판하는 말로 마무리 짓게 되어 이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심경호 철학과 국문학을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에서 중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껍고 팔리지 않는 책을 내기로 유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