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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조원 빚더미 …'자동차 메카' 디트로이트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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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50년대 인구 180만 명을 자랑하던 미국 최대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시가 파산했다. 디트로이트는 185억 달러(약 21조원)의 빚을 갚지 못해 18일(현지시간) 연방 파산법 9조에 따라 미시간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는 이날 유튜브에 올린 비디오 성명을 통해 “고통스럽고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디트로이트는 파산신청을 낸 94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와 2011년 앨라배마주 제퍼슨카운티를 제치고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빚을 지고 파산신청을 낸 지방정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한때 미국 3대 도시로 꼽혔던 디트로이트는 60년대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라는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공무원·노조·시민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임금과 과다 복지에 길들여진 노조는 파업으로 저항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시정부도 군살을 빼긴커녕 부정부패로 얼룩졌다. 2002~2008년 재임한 콰메 킬패트릭 전 시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공장을 멕시코 등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다.

 급기야 2008년 금융위기로 디트로이트의 심장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회사가 고전하자 고질병이 곪아터졌다. 90년대 100만 명으로 떨어진 인구는 지난해 70만 명으로 곤두박질쳤다. 공장과 인구 감소는 세수 급감으로 이어졌다.

재정난에 몰린 시당국은 경찰·교사·환경미화원 등을 감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치안과 생활환경이 ‘막장’이 되자 중산층의 도시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했다. 현재 도시는 흑인이 83%를 차지하고 인구의 3분의 1은 극빈층이다.

 범죄 신고 후 경찰 출동 시간이 평균 58분으로 미국에서 가장 늦다 보니 살인 범죄율은 미국 1위다. 7만8000채의 주택과 상가가 버려져 폐허가 됐다. 디트로이트 교외는 불에 타거나 잡초가 무성한 빈집들로 인해 유령도시를 연상케 한다.

주정부는 지난 3월 뒤늦게 크라이슬러 파산신청을 이끈 위기관리 전문가 케빈 오어 변호사를 영입해 빚 탕감 협상에 나섰다. 오어는 지난달 15일 채권자·공무원노조·연기금 대표를 불러 놓고 90% 이상 빚을 탕감하거나 상환을 연장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퇴짜를 맞자 파산신청이란 극약처방을 내렸다.

 앞으로 30~90일 동안 심리 후 법원이 파산신청을 받아들이면 디트로이트는 일단 빚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법원 결정에 따라 빚을 탕감받거나 상환 연장하게 된다. 대신 시도 세금 인상, 자산 매각, 인원 감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 조치를 통해 회생을 모색하게 된다.

 파산 관리를 맡게 된 스나이더 주지사는 “이번 파산보호 신청이 디트로이트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의 행정 서비스는 머지않아 복원되고 오히려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시의 퇴직 공무원들에 대한 연금과 의료보장, 채무상환 등이 80% 이상 삭감되면서 시의 재정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설명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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