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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파는 스펙, 해외파는 조직문화 탓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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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현유(가운데) 구글 상무가 서울 역삼동 ‘D.CAMP’에서 열린 ‘위대한 멘토링’ 타운홀 미팅에서 대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취직이 잘 안 되는 역사학과 학생이었다. 초·중·고 모두 국내에서 나왔다. 군대도 26개월 만기 병장으로 제대했다. ‘해외 비즈니스’는 단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꿨던 꿈이었다. 외국인들과 만나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꿈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MBA(경영대학원)를 가기 위해 대학 마지막 학기부터 GMAT(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시험)를 준비했고, 삼성전자에 입사해서는 출퇴근과 출장 일정 등 대부분의 자투리 시간을 에세이 작성에 공들였다. 현재 구글에서 TV부문 전략적 제휴 책임자로 근무하는 김현유(미국명 미키 김·36) 상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커리어 준비는 언제 시작했는가.

 “대학 2학년 때인 1997년에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과 달리 한국 기업에는 인턴 제도가 거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매년 출간하는 회원 주소록을 구했고, 그중 15곳을 추려 영문 소개서와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당신의 꿈 많았던 대학 시절을 기억하십니까’란 말로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AIG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 보험회사 인턴은 이후 근무했던 정보기술(IT)기업(삼성전자·구글)과는 다른 커리어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인턴을 시작했는데, 막상 가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잔심부름을 주로 했는데 두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됐다. 첫째는 ‘금융 분야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둘째는 ‘IT 분야가 흥미롭고 내게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IT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잔심부름꾼인 내게 ‘엑셀 프로그램을 공부해서 직원들을 교육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공부와 강의를 하면서 엑셀은 누구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고, 천리안·하이텔 등 PC통신 시절에 빠른 회사망으로 인터넷도 해봤다. 전산실 직원들에게 틈틈이 배운 지식으로 첫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 대학 전공이 인문학이다. IT 기업에서 직장을 갖는 게 어렵지 않은가.

 “솔직히 전공은 배치표 점수에 맞춰서 갔다. 그것이 나를 규정짓는 건 아닌 것 같다. 도전했던 기업 면접 때마다 ‘역사학 전공자가 왜 해외 업무를 하고 싶어하냐’란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100%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도 결국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이해가 선행되면 더욱 유리하다. 대학 시절 배운 여러 문명사도 그럴 때 도움이 됐다.”

 - 한국에서 학교를 나왔는데 구글에서 언어 문제는 없었는지.

 “영어가 중요한 것은 맞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입사 자체가 힘들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에 두려움을 갖는 큰 원인 중 하나는, 말을 할 때 문법적으로 완벽해야 하고 발음도 미국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IT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외국인이 굉장히 많다. 그중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인도계인데 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발음은 인도식이고, 문법에도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한다는 점이다.”

 -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따라 하는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말이 많다.

 “실리콘밸리를 무작정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서운 추진력이다. 조직이 결정하면 엄청난 속도로 뛴다. 반면 개인이 뛰어나도 조직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밑으로부터의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강점인 일사불란함과 속도에 실리콘밸리 같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혁신이 결합하는 한국형 혁신 모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대한민국 20대에게 매섭게 충고했다. 젊은이들이 장기화된 경기침체 속에서 너무 나약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을 보면 국내파들은 ‘해외파보다 스펙이 부족해서 취직이 안 된다’고 말하고, 유학파들은 ‘조직화된 한국 문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등 서로가 더 아프다고 한다”며 “이런 식의 사회 전반적인 힐링 열풍은 나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 전체적으로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20대는 남의 실패를 보면서 위로받을 시기가 아니라, 성공담을 보면서 가슴이 콩닥콩닥할 때”라며 “위로받기보단 꿈과 커리어에 설레 잠을 못 자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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