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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의사도 피할 수 없는 굴레 '진료실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올해 2월과 3월 한국보훈복지공단 산하 대전보훈병원과 경기도의료원 산하 수원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2명이 잇따라 해고됐다. 해고사유에는 모두 '진료실적'이 포함됐다. 이 일은 당시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과 맞물리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공공병원에서까지 의사에게 진료실적을 문제삼느냐는 비판도 일었다.

해고통보를 받은 두 의사는 각각 해당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이에 두 지노위는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경기지노위는 지난 4월 29일, 충남지노위는 6월 11일 해고처분이 부당하다며 해당 의사를 복직시키고 이들에게 부당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 판정결과는 언론을 통해 '진료실적을 문제삼은 공공병원의 의사 해고에 지노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는 내용으로 보도됐다. 이는 '공공병원은 의사에게 진료실적을 문제삼아서는 안된다'고 재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노위 판정문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판정결과는 유사히지만 판단근거에는 두 지노위간 차이가 있다. 공공병원 의사의 진료실적에 대한 시각차도 엿보인다.

진료실적, "공공병원은 구분돼야" vs "정당한 징계사유"

두 지노위 판정서에 따르면 저조한 진료실적이 의사의 해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은 동일하다.

▲ 경기도의료원 산하병원 정형외과 진료실적

수원병원 정형외과에서 계약직 의사로 근무하던 강 모씨의 진료실적은 2011년 경기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정형외과 10곳 중 9위, 2012년 정형외과 11곳 중 9위에 해당했다.

수원병원은 경기도 행정부지사의 특별지시사항으로 부진 진료과 폐지 등 경영개선을 위한 자구계획서 제출을 요구받은 상태였다. 경기도는 특히 의료이익 개선방안, 의원수지비율 증대방안, 공공의료활성화 방안,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율 전국평균 이하 유지 등을 경영개선 요구사항으로 요청했다.

더구나 강씨의 연봉계약서에는 '차기연봉계약은 진료실적과 병원이 평정한 인사고과에 의해 계약을 갱신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병원은 이와함께 불친절 민원이 가장 많다는 이유를 들어 강씨에게 계약기간 만료를 통지했다.

경기지노위는 이에 대해 "진료실적이 단지 의사 개인의 역량보다 지역별, 병원별 특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이런 특성을 감안할 필요성이 있다"며 "진료실적과 불친절민원 등을 기준으로 근로계약기간 만료 통보를 한 것은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전보훈병원 산부인과장인 이 모씨는 2010년 본인이 동의한 '2009년 대비 매년 30% 진료실적 향상' 목표를 당해년도에 달성한 이후 2011년부터 2년 연속으로 미치지 못했다. 보훈병원은 여기에 본인이 2009년 제출한 '부인과 질환에 대한 진료과와 폐경기 클리닉 개설' 등 산부인과 활성화 방안 미추진, 비급여 항목의 급여처리 등을 덧붙여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해임했다.

▲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대전보훈병원 산부인과 진료실적

충남지노위는 "진료실적 향상 목표는 산부인과 하향추세 및 (병원의)산과폐지 상황을 고려할 때 의사 개인 노력만으로는 달성이 어렵고, 감사에서 실적저조 지적을 받은 이후엔 향상됐다"며 "징계 양정에 있어 징계해임처분은 과중하다"고 판단했다.

양 지노위 모두 진료실적이 단지 의사개인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공공병원이 의사의 진료실적을 징계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경기지노위는 "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주민의 보건향상에 기여하고 지역의료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취지를 고려해 볼 때 여타 의료기관과는 진료실적에 있어서 구분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충남지노위의 판단은 달랐다. "2009년 진료실적이 저조했던 점이 인정되고 개선책으로 진료목표치 달성에 대한 합의를 했음에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공병원 의사의 진료실적에 대해 한쪽은 민간의료기관과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한 반면, 한쪽은 노사간 합의된 사항이라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의사평가 기준 '진료실적'…의견 분분

공공병원 운영에 있어 진료실적의 의미를 어디까지 둬야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보건복지부 역시 이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복지부 공공의료과 관계자는 "(정부에서는)공공병원이 지속가능한 공공의료를 수행하기에 차질이 없을 정도의 운영은 가능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경영개선을 독려하고 있다"면서 "단 이는 민간병원처럼 실적을 내야 한다는 차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익성 유지를 위한 부분은 지자체가 보존해 주되, 나머지는 의료원이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본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경영개선은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어디까지가 자생력을 위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경영개선인지 선을 긋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고 강조했다.

공공병원들이 진료실적을 의사 인사고과 연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공병원에서 진료실적을 의사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박형근 복지구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진료실적은 당연히 의사의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진료실적은 당연히 포함하되 원장이 지휘·관리권을 갖고 의료진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공공병원 원장들이 경영실적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원장이 행할 수 있는 것이 결국 경제적 인센티브 부여와 진료실적에 따른 해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공공병원 의사 고용 시스템이 의사가 부족하고 병원들이 늘어날때 만들어진 30년이 넘은 것"이라며 "돈으로 고용하라는 현재의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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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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