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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리오에 걸린 실족 방역|의문 많은「콜레라→비브리오→콜레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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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여일 동안 충남 전북 등 서해안일대에 번지고있는 괴질은 9일 진성「콜레라」로 밝혀졌다. 이 괴질은 보사부가 지난 2일 의사 「콜레라」라고 발표한 뒤 3일에는 장염「비브리오」에 의한 식중독으로 고쳐 발표했고 9일 에서야「콜레라」로 공식 발표되는 등 세 번을 번복하는 혼란을 빚었다. 이번「콜레라」는 첫 발병 (8월28일)된지 13일 만에야 정확한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취해진 방역 조처도 허술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을 막지 못했다.「콜레라」로 인정케 됨에 따라 보사부는 군산시와 옥구·고창·부안·서천군을 오염지역으로 선포하고 각급 학교 휴교 등 비상방역대책을 세우는 등 뒤늦은 방역지시를 했으나 이번 사건을 이같이 확대시킨 책임은 국민 앞에 지지 않을 수 없게됐다.
「비브리오·논·헤몰리티쿠스」(일명「아시아」형「콜레라」) 「비브리오·헤몰리티쿠스 (일명「엘토로」형「콜레라」)비브리오·파라·헤몰리티쿠스(일명 장염「비브리오」)등 크게 3종으로 구분되는「비브리오」균은 쉽게 얘기해서「콜레라」냐 식중독이냐로 나눌 수 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견>
「아시아」형「콜레라」는 해방 직후인 46년에 우리나라에 상륙, 1만5천6백44명의 환자와 1만1백81명의 사망자를 낸 치사율 70% 이상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고 「엘토르」형「콜레라」는 64년에 상륙, 20명의 환자와 2명의 사망자를 내어 치사율이 10%안팎이며 조기발견 치료하면 1백% 완치할 수 있는 가벼운「콜레라」로 알려진 것이다.
식중독으로 불리는 장염「비브리오」는 62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의대의 기용숙 박사가 64년에 처음으로 발견했으나 일반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지난 7월12일 안동·울진 지역주민 2백95명이 이에 중독되어 6명이 사망함으로써 일반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식중독에 걸리면 설사·구토·탈수 등 증세를 보여「콜레라」로 잘못 인식되기 쉽다.
단지 식중독은「콜레라」가 전염성이 강한 반면「비브리오」균을 많아 먹지 않는 한 걸리지 않고 체온이「콜레라」와 달리 37。∼38。로 올라가는 등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의사「콜레라」환자 발생이라는 군산 검역소장의 보고를 받고 현지에 가서 임상학적·세균학적 검사를 한 기용숙 박사는 이 병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와 상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비브리오」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표, 끝까지 연구해서 WHO(세계보건기구)등 세계학계에 공표 할 것임을 밝혔다.
기 박사의 주장에 대해 보사부당국은 즉각 그렇지 않다고 맞서면서 장염「비브리오」에 속하는46종의 식중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오는 균에 의한 식중독이라고 해명했고 환자가 날로 늘어나자 6일에야 지금까지 알려진 장염「비브리오」와는 약간 다른「비브리오」속의 균임을 시인, 전염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아래 8일부터 방역대책을 바꾸었다.

<병균 검출 못해 5일 방치>
더우기 지난달 29일 첫 환자인 김종선씨(37)가 죽기까지 옥구군 보건소는 이를 알지 못했으며 발생 5일만에 이를 알고도 시설이 전혀 없어 병균을 검출해내지 못한 채 군산검역소에 의뢰, 균을 배양시켜 평판 배지에 옮겨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등 원시적인 검사로 『의사「콜레라」』라고 진단, 첫 발견부터 손을 늦게 썼기 때문에 환자의 급증을 막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방역전문가들은 현재까지 갈팡질팡한 보사 행정이 예산부족에만 핑계를 댈 수 없는「구멍 뚫린 방역대책」임을 폭로했다고 규정, 새로운 연구와 결단성 있는 정책이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권찬혁 박사는「비브리오」균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지는 이미 5년 이상 지났으나 아무런 연구가 되어 있지 않고 지난7월에 3백명에 가까운 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장염「비브리오」였다고 단정만 한 뒤 이에 대한 예방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고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해가 바뀔 때마다 더 독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콜레라」균이 상륙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역학조사도 병행했어야>
「세브란스」의대의 모 교수는 임상·세균학적 조사와 함께 역학(역학)조사가 병행됐어야 했다면서 역학조사를 통해 발병지역이 지역적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아니면 산발적 인가하는 것을 이미 파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무엇을 어떻게 먹고 발병했는지를 재빨리 가려 그 근원에 대한 판매금지 또는 어획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사부는 첫 조사결과「콜레라」가 아니었다는 판단이 생기자 이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진작 해야할 일을 늦게 서두르는 태도를 보였다.
일단「콜레라」로 보고 방역대책을 세웠던 보사부는 현지에「콜레라」예방약 30만명 분과「링게르」2백병, 「스트렙토마이신」5백병, 살충제인 DDVP30갤런, 「쿨로르갈크」(소독약)30파운드 등을 배정, 예방 접종했으나 「콜레라」가 아니라는 판단이 나자 5일까지 아무런 방역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

<전문가 연구에 뒷받침을>
「비브리오」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기용숙 박사룰 제외하고는 불과 2, 3명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에 기 박사를 현지에 보냈다가 급히 불러 올리기를 두 번이나 하는 등 계속적인 검사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보사부의 한 당국자는 방역예산이 연간3천8백만원 밖에 되지 않아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근본적인「미스」는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책임의 소재를 흐리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보사부당국이 질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여주고 전문가들의 연구를 뒷받침하여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이다. 【이돈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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