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민주화 입법, A/S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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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경제민주화법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 오너가 기업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가로채거나 세금을 편법으로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법의 취지와 달리 애꿎은 중소·중견 기업이 더 타격을 입게 될 판이다. 최근 국세청은 이 법에 따라 대상 기업 6200개, 대상 기업인 약 1만여 명에게 증여세 자진 신고·납부 통지서를 돌렸다. 그중 30대 그룹 대주주 일가는 70여 명에 그쳤다. 법에 매출 등 대상 기업의 규모에 대한 규정을 빠뜨리다 보니 나온 결과다. 대어를 잡겠다면서 그물코를 너무 촘촘히 짜는 바람에 피라미와 치어만 잔뜩 걸려든 셈이다. 급기야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주말 중소·중견 기업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며 정부에 건의서를 냈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진작 예고됐지만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1년 법 제정 때부터 ‘중복 과세’ ‘중소기업에도 세금 폭탄’이 우려된다며 논란이 컸지만 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올 4월 ‘국세청장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이 중소기업 과세 제외를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관련 법 시행령에 ‘중소·중견 기업은 제외’라고 한 줄만 넣어주면 될 것을 안 해줘 여기까지 왔다니 국회·정부의 직무유기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올 5월 개정 공포된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법’도 마찬가지다. 법의 취지는 1억원 미만의 정부 입찰을 10~50인 미만 소기업·소상공인에 몰아주자는 것인데 결과는 엉뚱하게 나왔다. 본지 취재 결과 대부분 소기업이 기술·자격 요건에 미달하는 바람에 정부 입찰이 아예 유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50인 이상 중소기업의 일감만 빼앗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소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려면 진입 문턱을 크게 낮춰주거나, 50인 이상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되 소기업에 가점을 얹어주는 식의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데 일괄 잣대로 딱 자른 결과다.

 올 7월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법 중에도 되레 중소기업·자영업자에 피해가 돌아갈 소지가 큰 규정들이 꽤 있다. 하도급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프랜차이즈법의 ‘예상 매출 서면 제출 규정’ 등이 그렇다. 건설업계는 “규제가 너무 심하면 되레 국내 기업에 하도급을 주기가 어려워진다”며, 프랜차이즈 업계는 “손해배상 소송이 줄 이을 것을 우려해 가맹점 모집을 크게 줄이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을 옥죄기보다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살 길을 열어주는 게 목표다. 관련 입법을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정교한 설계가 부족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만들었다지만 잘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한다면 당연히 만든 쪽에서 A/S를 해줘야 한다. A/S도 서둘러야 피해자가 늘지 않는다. 그게 국회와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