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철거시장 80% 싹쓸이' 다원그룹 회장 968억 횡령해 도주 … 로비 의혹 수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국내 대표 철거업체 회장과 임직원들이 7년간 1000억원에 이르는 회사 돈을 빼돌렸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수원지검 특별수사부(부장검사 김후곤)는 14일 횡령·배임·사기 등의 혐의로 다원그룹 자금담당자 김모(41)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했다. 또 달아난 회장 이금열(44)씨와 동생 이표열(40)씨 등 3명은 전국에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 등은 2006년부터 최근까지 매출을 부풀리거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 돈 968억원을 횡령했다. 횡령은 주로 계열사를 통해 추진한 도시개발·재건축업에서 이뤄졌다. 경기 평택가재지구 도시개발사업에서는 군인공제회로부터 빌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2700억원 중 134억원을 빼돌렸다. 이 회장은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이 돈을 쓴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또 이 자금 중 일부는 2007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건설업체 (주)청구를 인수하는 데 쓰였다. 청구를 인수한 뒤 청구의 자금 372억원을 횡령했다. 이 돈은 골프장 업체 인수 등에 썼다.

철거업체를 운영하던 이 회장은 건설·골프장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횡령 등을 저지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회장이 자금을 빼돌린 개발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단체와 시공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빌려준 2700억원을 돌려받을 길이 사실상 막힌 상태다. 농협 컨소시엄은 다원그룹의 경기 김포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 대출금 65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에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 남광토건과 신동아건설은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회장이 372억원을 빼돌린 청구 역시 자금난에 빠져 파산 절차를 밟는 것을 앞둔 상황이다.

 검찰은 다원그룹이 각종 개발사업을 따낸 배경에도 주목하고 있다. 검찰 측은 “시행 이력이 없는 이 회장의 회사가 개발사업을 따냈다”며 “그 과정에 관공서와 뒷거래가 없었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 등의 범행은 자금관리담당 정모(48)씨가 전·현직 세무공무원 3명에게 5000여만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꼬리를 잡혔다. 정씨는 2008년 12월 이 회장 철거업체(다원환경)에 대한 세무조사를 원만하게 해달라며 돈을 건넸다. 검찰은 지난해 말 이 사건을 수사하는 와중에 다원그룹의 횡령 사실 등을 파악했다.

 수배된 이 회장은 20대 초이던 1980년대 후반 철거 전문업체에 들어갔다. 이후 서울·경기 지역 재개발 예정지에 철거 ‘실행조’로 투입됐다. 여기서 성과를 내면서 당시 철거업체의 대부로 불리던 A씨 형제 눈에 들어 이들의 운전기사가 됐다. A씨 형제는 97년 당시 27세이던 이 회장을 자신들의 철거용역회사 대표로 앉혔다. 철거업계 대부의 계보를 잇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그 뒤 2000년까지 서울지역 철거지 34곳 중 절반(17곳)에서 철거사업을 따냈다. 서울 주요 개발지역 중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한때 이 회장이 국내 철거시장의 80%를 싹쓸이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개발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이 회장은 재개발 조합 및 건설사, 정치권 등에 로비를 한 혐의로 2006년 서울중앙지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당시 특별한 혐의점을 잡지 못하고 이씨를 풀어줬다. 그러나 최근 세무 관련 수사에서 결국 범행이 드러났다.

수원=윤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