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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잊으려다 건망증 … 불안·분노·자책감에 불면증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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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호 06면

7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지난 6일 착륙하다 활주로와 충돌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OZ214편 여객기 동체가 불에 탄 채 놓여 있다. [뉴시스]

#1 사고 후 반년이 지났지만 김모(36)씨의 오른쪽 다리엔 화상 흉터가 남아 있다. 3월 13일 전남 여수 대림산업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부상자를 돕다 생긴 상처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대림산업 하청업체 근로자였던 김씨는 사고를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생생히 기억한다.

마음의 흉터, 대형사고 트라우마

 “아직도 그 아수라장이 기억납니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 숨이 멎어 축 늘어진 동료들 모습까지 모두 생각나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살아남은 김씨에게 더 깊게 파인 흉터는 몸이 아닌 마음에 있었다. 그는 사고 직후 두통이 심해졌다. 길을 가다가 멈춰 선 순간도 있었다. 귀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악몽을 자주 꿨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기 힘들었다.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가려는데,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바로 몇 m 앞 화장실을 못간 적도 있다. 누워 있을 때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고, 벽걸이시계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린 적도 있었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동료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미워졌다. 주변에서 깔깔대며 웃는 모습도 싫어졌다. 전남 재난심리지원센터는 사고 1개월 후 김씨를 진단한 결과 트라우마가 너무 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고위험군이라고 판단했다.

 #2 2003년 2월 18일 대구. 오전 출근길에 일어난 방화로 지하철 12량이 불타면서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생존자 중 한 명인 A씨. 사고 후 어렵사리 학교를 마친 그는 자기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의 한 식당에 취업했다. 하지만 그에게 사회 부적응이 일어났다. 사소한 꾸지람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했다. 가끔 멍해져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했다. 꽁치를 굽다가 잠깐 나물을 다듬다 보면, 어느새 꽁치를 까맣게 태웠다. A씨는 결국 3개월 만에 다시 고향에 내려갔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선명한 사고의 기억,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통증,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치는 분노. PTSD 전문가인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정신과장 박용천 교수는 “PTSD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증세”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개인은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가족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적절한 치료가 없으면 평생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공사 추락 사건 생존자인 윤모(53·여)씨도 비슷하다. 이 사건의 보상처리 소송이 해결되는 데 10년이 걸렸다. 윤씨는 “숨진 동료들을 생각해 법정 투쟁을 불사했다. 하지만 턱도 없는 보상은 물론 그 과정에서 국가와 해당 항공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였다. 월드컵을 앞두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국가는 우리 같은 서민들의 입장에 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고 피해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2007년 5월 17일 서울 원묵초등학교에서 소방안전훈련 차원에서 굴절 사다리차에 탔던 학부모 3명이 20m 높이에서 떨어져 2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학생 285명 중 50.5%가 PTSD를 보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문의와 상담사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6학년이었던 황모(17)군은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그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친구들과 계속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복도식 아파트나 높은 곳, 소방서 옆을 지날 때 몸이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서울내러티브연구소 최남희(서울여자간호대학 교수·한국재난관리학회장) 소장은 “정신적 충격은 부상자나 목격자나 똑같다. 오히려 직접 다친 사람은 몸이 아프기 때문에 정신적 충격이 늦게 온다. 그래서 목격자 중 어린이 등 취약계층이나, 늘 현장을 다니는 구호요원·소방대원들에 대해선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재난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두 트라우마로 고생하진 않는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PTSD를 극복한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 230시간 만에 구조된 최명석(39)씨가 대표적 예다. 건설회사에 근무 중인 최씨는 “처음엔 사고 자체를 잊고 싶었는지 건망증이 심해졌다. 책을 한 페이지 읽으면 바로 전 페이지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면증도 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또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라 트라우마를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내가 삼풍 사고 때 구조됐던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평소 성격이 긍정적인 사람들이 비교적 잘 극복한다.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던 사람이 사고를 당해 트라우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도 국민 중 PTSD 증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비율은 남성(1.0%)보다 여성(2.2%)이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이게 개인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심각한 상태였던 사람도 적절한 치료를 받아 회복하는 사례가 많다.

 전남 재난심리지원센터는 여수 사건을 겪은 김씨와의 상담을 통해 마음속 분노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왔다. 또 가족과 친지들이 김씨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 안정감을 되찾도록 했다. 센터 관계자는 “김씨는 정상군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형사고는 물론 교통사고·범죄 등 PTSD로 연결될 수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남희 소장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건·사고에 대해 빨리 잊게 만드는 걸 능사로 안다. 오랜 기간 관찰해 트라우마 등 다른 문제가 없는지를 본 뒤 보상에 나서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용천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국가에서 하나의 전담부서를 만들어 관리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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