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사람하나 잘못 쓴「펄·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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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66년7월15일 정오에 나는「펄·벅」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른 M여사 내외의 안내로「필라델피아」에 있는「펄·벅」여사의 대저택을 방문했다.
현관 정문으로부터 중문·현문할 것 없이 유리창이란 창은 모두가 찬란한 오색꽃무늬에 엉겨서도<보진주>라는 세한자을 선명하고 큼직하게 나타나고 있었고, 낭하와 방마다의 장식품은 거의가 중국식 최고의 조각이 나에 슬픔이었다. 상·하층 여러개의 응접실과 서재에는 그야말로 만권 서적이 꽂혀 있고 벽에 걸린 액자나 족자들도 중국고전 서예나 그림들 이었다.
자그마한 실내「풀」에는 유리지붕의 광선 때문에 더욱 시퍼렇게 보이는 물이 남실대는데 그 한쪽에서는 분수가 시원스럽게 물안개를 뿜고 있었고 기암괴석으로 오묘하게 꾸민 사치스러운 실내정원에는 앙큼스러운 폭포의 물줄기가 꽤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집안 안내를 마친 여사는 바로 그 정원이 보이는 식당에 우리를 초대했는데 작은 차숟갈에서부터 식기등 크나큰 기명까지가 중국품 일색이었고, 차나 음식도 모조리 중국식이어서 그가 얼마나 중국의 문물을 사랑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의 인물「해리스」는 여사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서 물론 식탁도 함께 했고, 식사가 끝난후 여사의 거실에서 서너시간 담화를 하는데 그때도 미국에서는 재단에 대한 오해와 풍설이 떠돌았던 까닭에「해리스」는 해명서인지 건의서인지 꽤 두꺼운 서류를 핏대를 올려서 읽으며 선명하며, 하지만 여사는 조용히 경청만하고 있다가 낭독이 끝난 후에야 M여사내외와 넷이서 주고받고 오랜 시간을 토론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화제는 오로지 재단얘기 뿐이었다.
오후 5시반에야 나는 여사와 작별하면서『나는 작가인「필·벅」여사를 찾았는데 야심적인 사업가 당신만 보고 간다』는 말을 남기고 왔다. 그때도 왠지「해리스」의 욕망에 불타는 강렬한 눈빛이 그림같은 여사를 뭉개버릴 것만 같아 은근히 염려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런 불상사를 일으키고 말아 여사에게 큰 타격을 줄뿐 아니라 우리의 한국 그 아들에게까지 치명적인 불행을 주게한 것은 참으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람하나 잘못 쓴 탓으로 여사의 모처럼의 사업을 좌절시킨 원한은 자못 큰 것이다. 박화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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