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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위기 인여당|은행 국유화 싸고 국민회의파 좌우로 대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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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루피」화의 평가절하. 은행국유화 등에서 비롯된 인도의 여당국민회의파내 좌·우파간의 악력은 급기야 동당의 분열뿐 만 아니라 인도의 정계·재계를 파경속으로 몰고갈 폭풍전야의 사태에 놓이게 하고 있다. 1천백만당원을 자랑하는 국민회의파좌파는「인디라·간디」수상의 영도하에 있으며, 우파는 재계의 실력자인 전부수상 경재상「모라르지·R·데사이」에 의해 대표되어 있다. 지난 7월중순「간디」수상이 은행국유화를 선언하자「데사이」재상은 이에 반기를 들었고,「간디」수상은『재상해임』으로 맞섰다.「데사이」씨는 곧이어 부수상직 마저 내던지고 좌파와의 협력을 거부, 당내분열은 표면화 하기에 이르렀다.
인도의 정계에서는 이같은 사태를 지금까지 열세이던 좌파의 우파에 대한「쿠테타」라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국부「간디」와「자와하를랄·네루」전수상에 의해 영도되었던 국민회의파는 독립후 줄곧 집권당으로 존재해 왔으나 72년의 총선이래 쇠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72년의 총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서는 정책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자가비판의 소리마저 높은 오늘의 당내사정이다.「간디」수상이 당내이대주의 하나인 우파의 거목「데사이」를 꺾고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의 경우 표면상으로는 은행국유화를 둘러싸고 「간디」수상과「데사이」부수상간에 맞선것처럼 되어 있으나 경제정책을 둘러싼 좌·우파간 대립은 좀더 깊은 곳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국민회의파는 인도의 민족자본을 우측에, 농민·노동자·중소상공업자등 서민층의 광범한 세력을 좌측에 업고 대영독립쟁취의「슬로건」밑에 1885년 결성된 정당이다.「네루」가 제2차 5개년 계획을 수행했던 1955년께 까지만 해도 양자의 이해는 어느 정도 상부상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인도가 재정난 때문에『대미의존』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중공의 비판을 받기 시작, 좌·우파간에는 정책적 대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도의 재계를 한손에 쥐고 있는 우파로서도 만성적 식량위기와 격심한 빈부의 차 때문에 그둘의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고집할 수 만은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던 것이「간디」수상이 은행국유화를 선언, 우파의 경제정책과는 타협의 한계선마저 돌파하고만 셈이 되었다.「간디」수상은 66년「샤르트리」수상의 사후,「데사이」부수상을 누르고 수상에 당선되었다. 아버지인 전수상「네루」의 후광도 있었지만 당내반「데사이」세력인「신디케이드」(우파·당장노급그룹)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눈에 띌 만큼 현저한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간디」정부의 정책에 대해 이들 당장노들마저 아연실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좌·우양파간의 알력은 현재의 당내사정으로 보아『당의통일』을 고수할 수 없는 선까지 몰고 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국민회의파의 좌·우파는 72년의 총선을 앞두고 정녕 결별할 것인지.
소련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고 중공의 입김이 아직도 센 인도가 지난 7월31일「닉슨」미국대통령을 맞이하여 주로 인도의 경제개발에 대한 미국의 원조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간디」수상은 미국이『인도의 생각에 많이 접근했다』고 말했는데 당장에는 알수 없으나 여수상인「간디」의 앞으로의 정책지표가 크게 주목된다 하겠다.<이상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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