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9) 영광 7백년의 후계자|찰즈 영왕세자 책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영국의 「찰즈」왕자는 7월1일 「웨일즈」지방의 고색창연한 「카나번」성에서 온갖 과거전통으로 호화찬란을 극한 의식을 통해 모왕 「엘리자베드」2세앞에 『충성스러운 신하』 가 될것을 맹세, 제21대 「웨일즈」공 (Prince of Wales)으로 서임받아 영국의제41대왕위를 계승할 왕세자로 책봉받았다. 「웨일즈」공 「찰즈」왕세자가 인구7억5천여만을 옹하는 대 「브리튼」 및 북「아이얼런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과 영식민지, 영왕에 충성을 서약하는 영연방회원국들의 『원수』가되는 왕세자책봉식날들뜬축제분위기속에서도 긴장은 한시도 가시지않았다.

<웨일즈주민 무마위해 명명>
근7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역사와 기회있을때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웨일즈」민족주의감정 때문에 책봉식장으로 향하는 「엘리자베드」여왕의 마차에 계란이 투척되고, 「찰즈」왕자와 딴 왕족들이 방탄조끼까지 차려입어야했다. 「웨일즈」지방을 정복합병한 「에드워드」1세 (1239∼1307)가 「웨일즈」인들을 무마하기위한 방편으로그를 계승할 아들 (후에「에드워드」2세) 을 「웨일즈」공으로 책봉한 것을 시점으로 「에드워드」3세때부터 왕의 장남은 으레 「웨일즈」공으로 서임되는 전통이 확립되었던 것. 그러나 「위일즈」 공의 서임은 왕위계승권과 결부되어 왕마다 장남에게 「웨일즈」공서임식을 올려왔다.

<의회입법따라 세습 변경도>
영국의 왕위계승권은 『세습』이지만 영국의 특이한 제도에따라 의회의 입법조치로 변경될수도있다. 영국 『헌법』의 가장 뚜렷한 특색은 불문성, 의회우월, 또는 의회주권, 내각정치에있다하겠다. 영국의 『헌법』은 장구한시간이 흐르는동안 생긴 역사적산물로서 이에는 ①1215년의 대헌장, 1689년의 권리장전, 1701년의 왕위계승법등 의회의 입법조치 ②법원의 판결 ③왕실·의회및 내각등의 주요관례, 심지어는 ④저명학자의 이론적 문헌등이 포함돼있다.
왕위의 계승, 재세중 왕의 폐위, 심지어 세습의 변경등, 영국국민이 받아들일수있는것이라면 이것도 『의회우월』-의회의 입법조치에서 예외일수없다.
따라서 왕위계승은 1701년의 왕위계승법에 규정된 바에따라 세습제로 돼있으나 1936년의 『폐하의퇴위 선언법』으로 보완수정되어, 이법으로해서「심프슨」부인과 세기의 사랑을 맺었던 「에드워드」8세(후의「윈저」공으로, 동생「조지」6세에게 왕위를 이양)를 왕위에서 폐위시키는 동시에 그의 후손들에게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윈저」공에게는 1772년의 『왕족혼인법』의 적용도 제외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여왕이나 그뒤를 이을 「찰즈」왕자가 헌정관례에서벗어나는 행동을 자행하여 국민의감정을 악화시키지않는한 영왕실은 안태의 특권을 누리면서 남계장손계승권이 그대로 보장될것이다.

<군주 테두리속의 대의정치>
이러한 특이성으로해서 영국의 정치제도를 통칭 『입헌 또는 제한군주제』라기보다는 『군주제전통테두리 속의 대의민주정치제도』라고도하는 학자들이 있다. 의회에서 제정되는 법에는 누구도 우위에 설수 없기때문에 「블랙스턴」은 이정신을 국왕의 경우에까지 적용하여 『국왕은 신과 법의 하위에 속한다』고 말하는가하면 영국의 19세기 경제학자이자 평론가 「월터·배저트」는 그의 저 『영국헌정론』에서 『영국군주제』를 가리켜서 『위장공화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영국의 『군주제』가 과거의 전통적형태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으면서 실질내용은 오랜 세월의 대국왕정치권력투쟁과정에서 명목상의 군주정으로 변화해왔다. 이것을 단적으로 표현한것이 영국국왕은 『군림하지 통치하지않는다』 (The King reigns but does not rule) 는것.
그러나 영국의 입법원은 국왕의 이름으로 법을 제정하고, 행정권도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될뿐더러 사법도 국왕의 이름으로 이뤼진다. 그렇다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의회에 책임지는 내각, 그리고 사법부에 대해 실권행사를 하는것은 아니다. 1707년이후로 국왕이 의회에서 통과된 법령을 「비토」한 사례가없고 또의회의 다수당당수를 제쳐놓고 수상을 임명 (조각위촉) 한일도 없다. 국왕은 국사에 책임지는 수상과 각료들의 결정이나 권고에 따라 행동하고 모든 결정에 합법성을 부여하게된다.
그러나 이렇듯 실권없는 국왕도 경우에 따라선 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수도있다. 국가비상시나 전시에 국민단결의 상징으로 국력의 동원에 기여할수있을 뿐아니라 정당정치와 당파를 초월한 존재로서 제한된 테두리속에서도 중요국가처리에있어 내각에 권고와 경고도 발할수있다. 『의회우월』이 확립돼있는 영국에서 의회는 필요에 따라, 또 국민감정의 배향에따라 재세중의 국왕을 퇴위시키고 또 왕위계승권에 변동을 가해오긴했지만 「찰즈」왕자와 같이 온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세에까지 이르는동안 눈밖에 나는 탈선행동을 저지르지 않는한- 즉 영국국민이 받아들일수있는 왕위계승자로 처신하는한- 영국의회가 과거에서와같이 중대한 왕실문제에 개입하진 않을것이다.

<국사에 큰영향력 미치기도>
그러나 의회는 입법으로 무엇이든지 할수 있기때문에 영국국왕은 어느 의미에선 국민의 간접적 『선출』성격을 띠고있다는것도 엄연한사실.
왕족의 일원, 앞으르 왕좌에 오를 몸이기에 오늘까지 그의 생활은 고된것이었다. 약간의 이례도 「매스컴」에 대서특필로 보더됐다. 『서명을 팔아서 잡비를 마련했다』, 『수학여행중에 「체리·브랜디」를 마셨다』는등. 「찰즈」왕자는 이런 유의 신문보도에 『「시베리아」에 가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은 생각』이라는 반응을보인것은 세계의눈에 항상 몸조심해야하는 고달픈 처신을 한탄한것.
글 김지운

<본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