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격진료 확대, 의사들 반대로 또 좌절돼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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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격진료는 10여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유망한 신산업이다. 환자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의사가 제공하는 진단과 치료 등의 의료서비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이라서다. 예컨대 선진국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지출비의 급증이다. 하지만 원격진료가 활성화되면 이 같은 의료비의 대폭적인 절감이 가능하다. 개발도상국은 대단히 열악한 의료인프라 때문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게 골칫거리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이 같은 의료사각지대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가 조만간 막대한 글로벌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들이 원격진료와 관련 산업을 적극 추진하고 육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고령화와 농어촌 등의 의료사각지대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원격진료에 대단히 적합한 나라다.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에, 세계 최강의 ICT 강국이다. 하지만 각각 세계 최고 수준을 합친 원격진료 분야는 정작 낙후돼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규제 때문이다.

 정부도 진작 중요성을 알고는 있었다. 2002년 원격진료 개념을 의료법에 도입한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허용해 놓고, 이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온갖 규제를 달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원격지에 있는 의사끼리 의료기술을 주고받는 건 허용했지만, 정작 중요한 환자와 의사 간 진료는 못하도록 했다. 이럴 바엔 의료법을 왜 개정했는지 무색할 정도다. 또 원격진료를 위한 시설공간을 의무화하는 바람에 응급상황 등 이동 중의 원격진료는 금지했다. 전자 의무기록도 반드시 병원에 비치하도록 해 의료기록을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것도 금지했다.

이처럼 규제가 덕지덕지 붙은 건 의사들의 반발 때문이다. 어제 의사협회가 원격진료의 확대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게 단적인 사례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과 정보통신회사 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과, 원격진료가 확대되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려 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이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전혀 일리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게 일자리 창출과 국부 증가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큰 원격진료의 확대를 반대하는 논리로는 궁색하다. 책임소재 문제는 보장보험의 신설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다. 물론 의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지만 그게 전체 국민의 이익과 맞바꿀 정도의 무게를 가진 건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이게 문제라면 미국처럼 원격진료에 별도의 자격 요건을 두면 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원격진료는 활성화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는 최대한 풀어야 한다. 이런 대전제하에서 예상되는 문제는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순리라고 본다. 의사들의 밥그릇 문제 때문에 또다시 원격진료가 좌절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