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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 우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집안식구들의 오랜 성화같은 졸라댐에 못이겨 겨우「텔리비젼」을 들여오던날 밤 일이었다. 처음으로 「스위치」를 돌리자「스크린」에 비친 장면이 바로 우리나라「팀」파 서독의「보루시아·팀」이 열전을 벌이던 축구시합광경이었다.
「나이터」의 불빛 아래서 수만관중의 열띤응원의 소용돌이 가운데 벌어진 이「게임」은 처음부터 정확한「패스·워크」와 억센 체력으로 서독「팀」 이 「리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몸집이 좀 약해보이고 기술이 띨어진 우리「팀」도 꿋꿋한 투지와 재빠른 동작으로 잘싸워서 실력에있어서 서독「팀」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전반전에서 서독「팀」이 어렵잖게 얻은 한점을 우리「팀」은 곧 후반전이 시작하자 1분 후에「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대1「타이」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후의 시합은 서독「팀」의 여유있는「게임」운영과 우리「팀」의 기술부족으로 3대1의「스코어」로 그쪽「팀」이 우승하고야 말았다. 특히 시합 종결을 몇 분 앞두고 서독「팀」이 얻은「코너·킥」의 「볼」이 마치 마술사가 부리는 대로 굴러가는 공처럼 싱겁게 「골인」해버려, 모든 관중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하나의 신기라는 표현도 잘 어울리지 않는 비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번 시합을 보는 가운데 아무래도 「필연」과 「우연」의 싸움이었구나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서독「팀」이「코너킥」을 그렇게 멋있게「골·인」으로 이끄는데 우리「팀」은 모처럼 있었던 몇번의 「찬스」를 번번이 놓쳐버리는가 하면 공을 문앞까지 끈기있게 몰고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맞추는 식으로 차버려 요행을 바라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수가 잦았다.
더구나 서독「팀」의 「골·키퍼」는 반드시 공을 붙잡으면 자기편의 누구를 노려서 손으로 던지는 수법을 쓰는데 반하여 우리「팀」은 그저 멀리 차버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때에는 멀리 차버리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공이 자기「팀」선수에게 정확하게「패스」되는 편이 더욱 바람직한 노릇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시합은 「우연」이「필연」에 패배 당한 싸움이었다고 평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성싶다. 서독「팀」이 이긴 것은 물론 오랜 기슬의 연마에 잘 짜인「팀·워크」의 덕분이라 해도 좋겠으나, 그러나 우리 편도 어쩌면 이길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다름 아닌 필연에 우연이 얻어맞은 결과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곧 자기에게 굴러온 공을 정확하게 자기편에 「패스」 한다거나 「골·인」까지 빈틈없이 몰고 가지 못하고 요행스런 「골·인」을 바라는 듯 한 경기방식의 차가 승부를 갈라놓는 관건으로 된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편도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실력을 닦아 「우연」을 「필연」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기술연마에 힘쓸 것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거기에다 더욱 우리의 정신적인 자세도 함께 따라야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뿐인가. 우리의 생활주변을 살펴보면 이와 비슷한 사고방식 행동방식의 예를 얼마든지 볼 수있다. 한 목적을 향하여 필연적인 곧 합리적이요 합목적적인 노력과 정진을 거듭하여 성공하는 것 보다도 오히려 운을 기대하고 요행을 바라는 생활과 행동이 더욱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동익 <중앙대교수·철학>
이번 주일부터 「파한잡기」 집필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김기창 <동양화가>
▲이두현<서울대 사대교수·국문학>
▲주정일<전보사부부녀국장>
▲서동익<중앙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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