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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디지털 고릴라 … 충무로 활력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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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미스터 고`에서 중국의 서커스단 소녀 웨이웨이(쉬자오·왼쪽)가 고릴라 링링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사진 쇼박스]

야구배트를 어깨에 지고 위풍당당하게 타석에 선 고릴라 링링. 전광석화처럼 공기를 가르는 배팅에 고릴라의 털도 함께 흩날린다. 생전 처음으로 김치를 먹어본 링링은 매운 맛에 놀라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자빠진다.

 한국영화를 또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인가. 충무로 처음으로 3D 디지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다. 8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미스터 고’(17일 개봉, 김용화 감독) 시사회에서 링링의 전모가 처음 공개됐다.

바람에 날리는 털까지 섬세하게 표현

김용화 감독

 ‘미스터 고’는 일단 한국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300억원, 마케팅 비용 포함)가 들어갔다. 280억원이 투입된 ‘마이웨이’(2011, 강제규 감독)의 규모를 넘어섰다. 중국자본도 55억원 들어가, 18일 중국 5000여 스크린에서도 개봉한다.

 영화는 허영만 화백이 1985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한 ‘제7구단’이 원작이다. 중국 서커스단의 소녀 웨이웨이(중국배우 쉬자오)가 도산 위기에 처한 서커스단을 살리기 위해 고릴라 링링을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수퍼스타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에서 김용화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배우 성동일이 링링을 한국에 데려오는 에이전트 성충수로 출연한다.

야구하는 링링에만 129억원 들여

  영화의 성패는 100%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빚어진 링링의 생동감이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실사(實寫) 장면에 녹아 드는지, 감정표현이 얼마나 풍부한지에 달려 있다. 영화에서 링링이 등장하는 장면은 1000여 컷에 달한다. ‘킹콩’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등 디지털 동물 캐릭터가 주연으로 나온 할리우드 영화는 드물지 않았지만,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경우다.

 영화의 무게중심은 단연 링링이다. 캐릭터 연구·구현에 전체 영화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인 129억원이 투입됐다. 김 감독은 당초 외국 시각효과 업체를 섭외했지만, 6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신 국내 인력들을 모아 시각효과 회사 ‘덱스터 필름’을 차렸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뉴질랜드 감독 피터 잭슨의 CG전문업체 ‘웨타’가 연상된다.

김 감독은 4년 여 작업 끝에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컴퓨터로 입체화하는 모션 캡쳐 기법으로 고릴라의 동작 하나 하나를 완성했다.

또한 고릴라의 섬세한 털을 표현하는 제작 프로그램도 자체 개발했다. 덕분에 80만개 이상의 털로 둘러 쌓인 링링의 외모를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미스터 고’의 기술적 성취에 대체로 좋은 점수를 줬다. 야구를 하는 링링의 액션이 자연스럽고, 3D 효과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개발사 ‘FX 기어’의 최광진 기술이사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CG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거쳤고, 독자 기술로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치밀하지 못한 드라마 … 신파 아쉬워”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기존 영화들의 CG 효과는 대부분 밤이나 어두운 장면에 치우쳤는데, ‘미스터 고’는 낮 장면이 많은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식인 멧돼지를 CG로 구현한 ‘차우’(2009, 신정원 감독)보다 동물 캐릭터가 리얼하다”고 했다.

  이야기가 신파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평론가 조희문(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씨는 “기술적 성과는 인정하지만 불명확한 선악 구도와 군더더기 장면 등이 이야기 흐름을 헐겁게 한다”고 비판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김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드라마가 치밀하지 못하다. 웨이웨이와 성충수의 교감이 비약으로 느껴지는 등 감동을 이끌어내기 힘들다”고 했다.

 김용화표 휴머니티가 특유의 유머 코드와 어우러져 있고,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흥행에는 성공을 거둘 것이란 의견도 많다.

강유정씨는 “드라마에 아쉬운 점은 있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큰 흠결은 아니다. 848만 관객을 모은 ‘국가대표’(2009)에 못지 않은 흥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현목·지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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