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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의 「문화혁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맹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교는 「하노이」의「구엔·아이·콕」정치학교로서 거기의 교관에는 「보·구엔·지압」국방상겸 월맹군총사령관의 이름도 들어있다.
이 학교에서 정치학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배우는 학생중에는 당정군의 간부가 많다.
1967년 9월까지 이 학교의 교장은 당시 정치국원으로 유명했던 「호안·민·친」이었다.
그런데 그의 그후 소식은 아주 끊겨버리고 생사여부도 확실히 알고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온·콴·환」대위라는 특무기관의 정보장교가 요즘 월남정부로 귀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비로소 「친」교장 몰락의 경위가 그의 입으로 밝혀졌다.

<군사적 목표 회의>
「호안·민·친」교장이 체포되어 호지명 정권 타도를 꾀한 혐의로 반역죄로 기소된 사건은 그것을 시초로하여 작년까지 꼬리를 끈 대대적인 숙청공작과 함께 「하노이」에서도 비밀이 가장 질 보장된 사건이었다. 사건을 적발한 것은 다름 아닌 「레·둑·토」있다. 그는 정치국의 유력한 일원으로서 「파리」의 화평회담에서 월맹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순수한 공산주의자로서 그리고 정치정세의 탁월한 분적가로서의 「친」교장은 군사력만으로는 「사이공」정권타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경제악화를 경고>
그가 그 이유로 들고있는 근거는 월남의 군사작전이 오래 끌면 끌수록 월맹의 경제정세는 악화하고 정치기반은 동요하며 인적자원은 고갈하여 여기서 만일 무슨 돌발적인 것이라도 일어나면 그것은 호지명정권의 붕괴의 원인으로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 재료를 하나하나 제출하여 많은 고관들을 납득시켰다.
이 사건이 「구엔·아이·콕」 정치학교에 미친 충격은 유달리 심각했다. 많은 교관과 학생은 국가의 기본정책에 관해 이렇게 심각한 대립이 있고 보면-특히 월남의 군사력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 때인 만큼 월맹의 전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불안의 빛을 농후하게 보이고 있다고 한다.

<패배주의 퍼지고>
소문에 의하면 「레·둑·토」는 사건에 연좌된 중심인물의 몇 사람인가가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이 그후 월남으로 파견될 장병사이에 갖가지 불안과 불만을 심었음을 심히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체포된 정부고관의 한사람, 외무성의 의전국장 「부·딘·휜」은 「친」교장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말한다음 그 이유로 「하노이」정권은 국민의 불만이나 그들의 괴로온 생활에 전혀 무관심한데 월남에 출정하는 군대사이에는 패배주의가 퍼져있고 이것은 국가의 전도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레·둑·토」가 정기적으로 「파티」와 「하노이」사이를 왕복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파리」의 월맹대표가 노골적으로 비타협적인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는 이유도 「호안·민·친」사건이 설명해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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