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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로테이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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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29면

대서양으로 툭 튀어나온 브라질 땅을 때리고 유턴해 유럽의 북단까지 순환하는 해류는 적도의 따뜻한 기운을 유럽의 고위도 지역까지 실어 나른다. 이 해류 덕분에 유럽에서는 태평양에 접한 러시아 땅보다 훨씬 높은 위도대까지 문명이 번성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이 1500년 브라질을 손에 넣은 것도 이 해류의 장난이다. 포르투갈 사람인 카브랄이 인도로 향하다 이 해류에 휩쓸려 표착한 곳이 브라질이었다. 우연과 실수, 자연의 조화가 만들어 낸 역사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해류가 연결한 포르투갈과 브라질 사이엔 나폴레옹 등장 이후 격랑이 인다. 포르투갈 집권층은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자 브라질로 피신했다. 그 뒤 포르투갈로 복귀한 세력과 브라질에 남은 세력으로 갈리면서 브라질은 독립의 길을 걷는다. 독립 이후엔 쿠데타와 혁명으로 만성적인 정치·사회적 불안을 겪었으나 1980년대 민주화를 거쳐 2003년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넓은 영토, 풍부한 자원, 2억을 넘는 인구, 그리고 이를 묶어내는 정치적 리더십에 힘입었다. ‘브릭스(BRICS)’로 부르는 5개 신흥대국 그룹의 멤버로서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3년 전에는 재정위기가 심각해진 포르투갈이 옛 식민지 브라질에 지원 요청을 할 정도였다. 지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해 달라진 위상을 과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브라질의 성장 이면엔 저금리의 외국발 뭉칫돈이 있다.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돈을 막기 위해 금융거래세를 도입했을 정도로 외자 유입이 활발했다. 그러다 지금은 그 돈의 썰물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 경기의 회복으로 돈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채권에서 주식으로 회귀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대전환)’의 전주곡 단계 정도인데도 그렇다. 브라질 정부는 외국 돈의 환류를 저지하기 위해 금융거래세를 없앴다. 금리도 몇 번 올렸다. 그러자 파산하는 개인이 늘고, 주택거품은 급속히 꺼지고 있다. 이래저래 위기의 경제다. 브라질이 신흥국 위기의 진앙이 될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브라질은 지금 정치·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다. 버스 요금 인상이 방아쇠를 당겼다. 항의 시위는 20년 사이 최대 규모로 번졌다. 터키의 시위가 그러했듯 중산층의 분노와 불만이 표면화한 것이랄까. 시위대는 경제성장의 주역이자 수혜자인 소비자다. ‘반(反)월가’ 시위와 같은 선진국의 시위는 경제적 충격이 제한적이지만 신흥국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세계 경제는 국내 정치적 충격에 약한 신흥국의 경제에 의존도를 높여 왔다. 유로존 위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미국의 재정절벽 등 선진국의 무기력과 내환 탓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위기들은 더디긴 하나 해결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선진국의 앞날은 이제 이전만큼 어둡지 않다. 무너질 것 같던 유로존은 무사히 살아 있고, 엄격한 긴축조치의 대부분은 과거의 일이 됐다. 선진국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혼란 회피의 능력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게 입증됐다.

선진국이 어디 거저 얻은 이름이겠나. 신흥국이야말로 남 걱정 말고 자기 걱정부터 해야 할 때가 왔다. 신흥시장을 떠돌던 돈이 선진국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 미묘한 시기에 브라질의 모태국인 포르투갈마저 위기에 휩싸인 건 우연일까. 중심이 아니면 다 위험해 보인다. 썰물의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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