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샛별의 가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고광일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

샛별.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을 일컫는 말이다. 금성은 태양,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데 때론 대낮에도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하다. 이 때문인지 금성을 부르는 세계 각국의 이름은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로마에선 미의 여신을 뜻하는 비너스. 기독교에선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의 루시퍼. 불교에선 석가모니가 금성이 빛나는 걸 보며 진리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고대부터 금성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금성은 또한 목동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목동들이 금성이 뜬 꼭두새벽에 양떼를 끌고 고원에 올라가 해가 진 후 집으로 돌아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금성은 고대의 대표적인 3D 직종인 목동들의 수호성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새벽별 보는 직업의 고단함은 바뀐 게 없다. 인력시장을 서성거리는 일용직 노동자, 출근버스에 몸을 싣는 공장 근로자, 첫차보다 부지런한 새벽 청소부 등 현대의 3D 직종 종사자들은 목동별과 함께 새벽을 시작한다. 목동별을 ‘노동자의 별’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금성의 환경은 너무 혹독하다. 지표면 온도는 섭씨 600도를 넘고 강력한 태양풍을 막아줄 자기장도 없다. 기이한 자전 주기로 인해 하루는 1년보다 길다. 노동자들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폭염이 몰아치는 여름에 야외에서 하는 육체노동. 갑을관계를 피부로 느끼며 속은 곪아가는 감정노동. 그들은 1년보다 하루 버티기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변변한 휴식시간도 없는 이들에게 주 5일제는 그야말로 꿈이다. 국가가 정한 법정근로시간이 있지만 노동 현장에서 개개인을 방어하기에 그 보호막은 너무 얇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4년 최저임금을 올해 4860원보다 7.5% 인상된 5210원으로 확정했다. 근래 가장 높은 인상률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34%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처음 도입한 1987년의 40%보다 떨어진 수치이고 국제노동기구 권고안 50%엔 한참 모자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를 다툰다. 2014년 최저임금으로 한 달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단신노동자 최저생계비 141만원에 못 미치는 108만원이니 생계를 걱정할 판이다.

 60년대만 해도 과학자들은 금성을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했다. 탐사위성을 금성에 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젠 새벽별 보기 운동이란 이름으로 근면성실이 가난 극복을 보장해주는 시대도 끝났다. 새벽부터 야근까지 불사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근면을 요구할 수 있을까. 물론 꼭두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삶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희망을 상징하는 샛별은 누군가에겐 최저생계비도 되지 않는다. 오늘도 금성은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서글프게 반짝일 모양이다.

고광일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