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타당성 없는 지역공약, 추진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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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공약 사업을 이행하기 위한 ‘지역공약 이행계획 및 민자사업 활성화 방안’이 어제 발표됐다. 정부는 전체 167개 공약사업 중 96개 신규사업은 착수하기 전에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먼저 실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타당성을 높이는 쪽으로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여전히 “지역 공약을 모두 이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론 경제성이 낮거나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은 보류하거나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예비타당성 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 사업에 착수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도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하반기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완료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일부 사업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지자체가 반발하고 나선 이유다. 새누리당조차 “예비타당성 조사만을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본다. 타당성은 반드시 따져야 하고, 그래서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업은 해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정치권은 지역균형발전도 고려하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뭔지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타당성을 조사할 때는 지역낙후도나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균형발전까지 두루 감안한다. 그런데도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꼭 해야 하나.

 그동안 타당성이 없거나 떨어지는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나라 재정이 얼마나 멍들고 국론이 분열됐던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과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 건설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선 공약이란 이유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사업이 끝난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지방 공항과 지방철도, 텅텅 빈 지방도로 등도 마찬가지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고 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국책사업은 반드시 해야 한다. 또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태도 변화는 긍정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세수에 구멍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대통령 공약사업도 타당성 위주로 재검토하겠다는 건 올바른 자세다.

 다만 걱정되는 건 민자사업 활성화다. 정부의 고충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공약 이행과 세수 부족의 딜레마 속에서 양자를 고루 만족시킬 대안은 사실 민자 유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민자사업이 왜 애물단지로 전락했는지를 충분히 점검해야 한다. 용인경전철, 서울시 지하철 9호선 등의 민자사업은 재정을 갉아먹는 하마로 전락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민자 활성화 운운하기 전에 왜 이렇게 됐는지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자사업의 가치를 조사, 평가하는 일련의 절차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