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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돈 주식투자 도박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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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김정태 국민은행장(사진)은 승부사다. 증권회사 사장에서 은행장으로의 변신, '국민+주택'이란 초대형 은행 합병 추진 등 도박에 가까운 일들을 모두 성공시켰다. 주식 투자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2001년 가을 9.11 테러로 모두가 증시에서 발을 뺄 때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민은행은 5천억원을 투자해 2천억원 이상을 벌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키로 했다. 국민은행 경영협의회는 11일 1조원 주식 투자를 승인했고, 국민은행은 '5분 대기조'로 증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왜 증시에 뛰어드나.

"국민은행은 리딩 뱅크다. 시장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 개인자산의 55%가 은행에 와있을 정도로 은행에 돈이 너무 몰렸다.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돌려야 한다. 자본시장이 가라앉으면 기업이 죽고, 기업이 죽으면 은행만 살 방법이 없다. 시장이 진짜 어려울 때 들어가서 시장 분위기를 살린 뒤 나오겠다는 거다. 지금처럼 안 좋을 때 국민은행이 주식을 산다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은행 입장에서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다. 종합주가지수가 700, 800으로 뜨면 우리 역할은 끝난다. "

-지금 같은 약세장에 거액의 고객 돈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 아닌가.

"그럼 주식 투자자는 모두 도박꾼인가. 자본시장을 도박판으로 몰면 안된다. 우리가 깨질 수 있는 최대 범위가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베팅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1조원을 넣어봤자 최대손실이 2천억원 안팎이 되는데 이는 국민은행이 감내할 수 있는 규모다."

-고객 돈을 보수적으로 굴려야할 은행으로선 맞지 않은 행위 아닌가.

"다 책에 있는 내용이다. 은행은 예금과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과 유가증권에 돈을 굴린다. 그런데 우리 은행들은 예금을 늘리는 데만 신경써 왔다. 두 팔이 있는데 한 팔만 써온 셈이다. 자금을 주식 투자에 쓰는 것은 당연한 일 중 하나다. 지금도 국민은행은 30조원을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다. 사람들은 리스크를 걱정한다. 나도 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주로 국공채 위주로 투자해 왔다. 하지만 리스크를 커버할 수 있다면 주식 투자를 할 수 있고, 지금이 그럴 때라는 얘기다."

-시장 전체를 위한다면서 왜 현대 계열사 지원에선 국민은행이 먼저 발을 빼곤 했나.

"그냥 빠진 게 아니다. 돈을 아무리 넣어봤자 살 수 없다고 판단이 섰기 때문에 손실로 처리하고 빠진 거다."

-언제 들어가나. 9.11 때는 종합주가지수가 500 밑으로 떨어지면 들어간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는데.

"지난 11일 경영협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은행이 해야 할 결정은 모두 한 셈이다. 자회사인 국민투신운용과 실적이 좋은 외부 투신운용사에 맡겨놓았으니 알아서 들어갈 것이다. 지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불확실성이 관건이다. 더 이상 나쁜 상황이 오기 어렵다. 이달 초 이사회에선 이라크 전쟁이 3월 초에 발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2주 후가 제일 좋은 타이밍이라는 의견이 개진됐다. 전쟁이 가시화하면 리스크가 다 드러나고, 시장 상황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9.11 테러 직후 주식투자를 해서 번 돈으로 하는 것 아닌가.

"그때 돈을 벌었으니 이번엔 날려도 좋다는 심정 아니냐고 묻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실적을 내가 까먹는 셈이 된다. '밑져도 본전'이 아니다. 나는 실적을 1년 단위로 평가받는 CEO다. 2년 전에 벌었다고 올해 까먹으면 주주들이 날 내버려두겠나."

-지난해 국민은행의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나.

"거의 모든 경영지표에서 목표 대비 99%를 달성했다. 문제는 딱 한가지, 신용카드 때문이었다. 신용카드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 평소 성과주의를 강조해 왔는데, 그같은 실적에 대해 책임을 물었나.

"카드회사 사장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경질했다. 관련 임원들도 확실히 책임을 묻겠다. 두고봐라. 3월이 주총이다."

-어쨌거나 자회사 관리를 잘못한 것은 행장의 책임 아닌가.

"맞다. 일차적으로 내 책임이다. 이사회에 '잘못했습니다. 행장의 목을 결정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이사회는 '통합은 성공적으로 했지만, 수익이 이게 뭐냐'며 경영평가에서 '미'를 줬다. 처음이었다. 이제까진 늘 '수'였는데. 나로선 오명을 남긴 셈이다. 그래도 드러난 부실은 지난해에 모두 털어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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