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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조업의 귀환, 한·중·일엔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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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 5월 행정명령 하나에 서명했다. “제조업 허브 아이디어를 공모하라”는 지시였다. 2억 달러(약 2280억원)에 이르는 상금까지 내걸었다. 당선작은 올 연말에 발표된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엔 내년 예산안에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추가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영타운 벤치마킹 프로젝트’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영타운은 쇠락한 석탄과 철강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원유와 셰일가스 개발에 쓸 파이프 공장이 들어서면서 되살아났다. 오바마는 “새로운 영타운 15곳을 선정해 연방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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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이 제조업을 부르짖기는 1980년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 미 대통령들은 제조업 대신 서비스나 금융산업에 집중했다. 굳이 제조업을 키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이들과 달리 오바마는 2009년 취임 때부터 제조업을 강조했다. 중산층을 복원하는 데 절실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였다. 그는 정보기술(IT)·자동차·에너지산업을 육성 대상으로 꼽았다. 그가 국제사회 비난을 감수하며 파산한 자동차 3사를 구제한 까닭이기도 했다. 올 1월 국정연설에선 제조업 육성을 핵심 과제로 발표했다. 범대서양과 태평양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도 제조업 육성과 관련이 크다.

 오바마 경제정책팀과 긴밀한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 소장은 홈페이지 칼럼에서 “미국이 빚을 내 소비하는 경제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경제로 대전환(Great Rotation)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 애플과 GE 등 대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거나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계 PC 제조회사인 레노버는 최대 시장인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이들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포기한 것일까.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수석 컨설턴트인 해럴드 서킨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들은 미국-중국의 임금 차이가 시간당 7달러 이내로 줄어들면 미국을 더 좋아한다”며 “중국 정부의 실질 임금 인상 정책 때문에 요즘 그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집권 이후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09년 12% 선까지 떨어졌던 게 지난해 13% 선을 넘어섰다. 덕분에 질 좋은 일자리 “50만 개가 최근 3년 사이에 생겼다”고 오바마가 지난달 자랑했다. 이른바 ‘제조업 르네상스’인 셈이다.

 그런데 그 파장이 한·중·일 경제를 뒤흔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이제껏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한·중·일도 덕을 보는 구조였다”며 “하지만 미 제조업이 커지면 한·중·일에 미치는 미 경제의 호황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한·중·일 사이에 분업 구조가 미 제조업 부활로 깨질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미국은 동북아의 한·중·일 3국에 자국 시장을 내줬다. 대신 국채·주식 등을 동북아 3국에 팔아 무역수지 적자를 벌충했다. 하지만 미 제조업이 커지면 동북아 3국의 대미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산업을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는다. 오바마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시작된 셰일가스 개발 붐을 타고 에틸렌 공장이 미국 내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다. 미국의 에틸렌 제조원가는 원유(가스) 산지와 가까워 한국의 4분의 1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경제 성장률도 더 낮아질 전망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미 제조업이 커지면 중국에 대한 미 기업들의 투자는 그만큼 위축되고 유럽 기업들 중심으로 판이 다시 짜이게 될 것”이라며 “중국의 최대 성장 원동력인 투자에 그만큼 공백이 생기면서 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대안으로 한·중·일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시설을 설치하거나 제조업체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미국 투자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JP모건자산운용 타이후이 수석 투자전략가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 때문에) 미 달러가치가 앞으로 계속 올라갈 전망”이라며 “한국 기업 등은 더 많은 돈을 들여야 미국 기업을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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