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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 있었네, 도심 한복판에 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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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달 30일 대구 동산동 구암서원에서 대구를 찾은 상명대 미술대학원 학생들이 투호놀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곳에 투숙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2일 대구시 중구 동산동. 섬유회관에서 계산성당으로 가는 이면도로 중간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란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화살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붉은색 벽돌이 깔려 있다. 골목길에는 차량 소음이 들리지 않아 아늑한 느낌이 든다. 담벽에는 훈장 앞에서 공부하는 학동과 붓글씨를 쓰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구암서원은 대구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근대 골목투어’를 하는 관광객 외에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달에 400∼500명이 찾고 있다. 이곳은 어린이 체험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옛 교육기관인 서원을 이해하고 전통놀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폭 2m 안팎의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150여m 들어가자 큰 대문이 나타났다. 대문에는 입춘방인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이란 글이 붙어 있다. 문을 여니 눈앞이 환하게 트인다. 마당을 지나 약간 높은 지대에 한옥이 버티고 서 있다. 흙으로 된 마당이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담장 아래 만들어진 텃밭에는 옥수수와 가지 등이 있다. 마당에서는 투호와 제기차기·고리걸기·널뛰기 등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뒤뜰에는 활쏘기장도 마련돼 있다. 집이 언덕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있고 소음도 거의 없어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왼쪽엔 제일교회의 거대한 첨탑이, 오른쪽에는 섬유회관과 성명여중 등 현대식 건물이 보여 묘한 대조를 이룬다.

 구암서원은 조선 현종 때인 1665년 중구 봉산동에 세워진 구암사가 서원으로 바뀐 것이다. 숙종 때인 1718년 현재 장소로 옮겨졌다. 서침·서거정·서해·서성 등 조선시대 문신을 배출한 달성 서씨의 문중서원이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 철거됐다가 1924년 유림이 다시 세웠고 43년 중수했다. 1995년 서원 내 숭현사(재실) 등이 북구 산격동으로 옮겨진 뒤 방치돼 왔다. 대구지역 문화재 보호단체인 대구문화유산이 지난해 이를 발견하고 서씨 문중과 협의한 뒤 옛 서당 건물 등 3채를 수리해 전통 체험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골목문화해설사 심보성(48·여)씨는 “지금은 도심 한복판이지만 당시엔 앞에 하천이, 뒤에는 산이 있는 명당이었다”며 “항상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구암서원은 체험공간뿐 아니라 숙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문간에 있는 복연당과 애심당 등 5개의 방이 숙소로 제공된다. 한 방에 2명에서 5명까지 묵을 수 있다. 가격은 4만∼10만원이다. 공동샤워장과 화장실 등도 갖춰져 있다. 최근 이곳에서 묵은 상명대 이인범(58) 교수는 “대구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지인의 소개로 묵었다. 늦은 밤까지 한옥 마루에 앉아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옥의 운치를 만끽했다”며 만족했다. 외국인도 많이 찾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인 40대 여성 2명이 10일간 머물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한복을 입고 다도도 배울 수 있다. 전성희(57·여) 관장은 “도심에 위치한 옛 서원에서 숙박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053-428-9900.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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