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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기억, 안정환에서 지단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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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안정환(Ahn Jung-Hwan).
그의 경기 막판 활약으로 한국 팀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월드컵사에 길이 남을 역전승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본의 아니게 루치아노 가우치 페루자 구단주의 우둔한 인기영합적 발언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다행히 마지막에 웃은 자는 페루자를 거부한 안정환이었다. 페루자는 처음에 안정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그와의 계약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정환의 반미적인 스피드 스케이트 동작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약간의 대립과 조롱은 건전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스피드 스케이트에 별로 신경을 안 쓰지 않는가.

B는 발락(Ballack).
그의 골로 독일은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는 출장정지 때문에 결승전에 뛸 수 없었다. 그리고 베컴. 그는 자신의 플레이보다는 머리 모양으로 신문 제목을 장식했다. 바슈튀르크는 브라질인이 아니면서 브라질 선수 같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 세 명은 밝은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나 비엘사 감독은 다르다. 그의 융통성 없는 전술 때문에 아르헨티나 팀은 엄청난 잠재력을 낭비했다.

C는 칠라베르트(Chilavert).
그는 이번 대회에서 2골을 넣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스페인 전에서 두 번의 대실수를 저지르며 파라과이의 조기 탈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카푸. 그는 3회 연속으로 월드컵 결승전에 뛴 유일한 선수다. 또 칠라베르트의 실수를 만회해 준 쿠에바스도 있다.

D는 다이빙(diving)이다.
국제축구연맹 용어로는 시뮬레이션. 다이빙은 비난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의로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다행히 이런 선수는 많이 보지 못했다). 실망스럽게도 (데이미언) 더프와 (엘 하지) 디우프 같은 뜨는 별들이 저지른 다이빙은 심판에게 적발되지 않아 결국 페널티킥까지 얻어냈다. 경기 후 비디오 회의를 갖고 제재를 한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E는 정력적이고 당당한 에이레(아일랜드).
하위 리그 선수들과 교체 선수들, 검증이 안 된 젊은 선수들을 모아 놓은 이 팀이 팀의 유일한 세계 정상의 스타(로이 킨) 없이 나중에 결승까지 올라 간 독일을 옳아맸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스벤 고란) 에릭슨도 E다. 그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렇다. 잉글랜드는 과거 월드컵 때처럼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탈리아가 도를 넘어선 최악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보여준 이후 가장 지루한 카테나치오를 했다.

F는 프랑스.
사우디아라바이와 중국과 함께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월드컵 대회에서 물러난 최대의 실패작. 그러나 이번 목표 미달이 영원한 추락을 뜻하지는 않는다. 쓸모 없는 노장들이 사라지면(잘가라, 크리스토프 뒤가리, 유리 조르카예프, 프랑크 르뵈프), 프랑스는 다비드 트레제게, 티에리 앙리와 유럽 본선에 진출한 21세 이하 선수들의 재능으로 넘쳐날 것이다.

G는 독일.
사랑 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여전히 월드컵 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H는 이에로(Hierro).
스페인의 고군분투하는 주장이자 자국의 역대 최다 득점원인 유일한 수비수. 그리고 KTF(코리아 팀 파이팅) 정신을 몸으로 보여준 홍명보와 한국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히딩크가 있다.

I는 이나모토 (준이치).
일본에서는 인정받는 선수지만 아스날에서는 불쌍한 신세가 됐다. 그가 어디든 다른 팀에서 뛰면서 실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I에는 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마라트) 이즈마일로프가 있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4년 후 각각 좋은 활약으로 스웨덴과 러시아를 이끌 것이다.

J는 아가호와와 오코차로 더 잘 알려진 줄리어스와 제이제이(Julius and Jay-Jay).
한 명은 떠오르는 슈퍼스타이고 다른 한 명은 은퇴가 가까워 왔다. 둘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이들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다.

K는 코리아.
한국의 대표팀 성원은 팀을 절정에 올려놓으며 12번째 선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L은 르메르.
프랑스를 망각의 세계로 이끈 구제불능의 감독. 그리고 가혹한 판정을 내렸던 선심들(linesmen).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최근 역사상 가장 많은 휘슬을 불었다. 국제축구연맹은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기를.

M은 MIA(전투 중 행방 불명된 군인).
기회가 별로 얻지 못한 선수들. 그러나 이들은 훌륭한 선수들이다. 에르난 크레스포, 빈첸조 몬텔라, 빈센트 칸델라, 피우스 은디에피, 다보르 뷰그리네츠, 드미트리 시체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자신들을 빛낼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

N은 가깝고도 먼 북한이다.
북한이 한국의 성공으로 기쁨을 얻었기를, 그리고 남북한의 어느 정치인도 정치적 목적으로 축구를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O는 최고의 골키퍼 올리버 칸.
그처럼 혼자 힘으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은 사람은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아무도 없었다. 결승전에서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골키퍼에 가깝다.

P는 힘의 균형에서의 힘(power).
힘이 유럽과 남미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이것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4년 후면 더욱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P는 또 셔츠를 잡아당김(pulling)에도 해당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 이를 막으려면 심판의 일관된 행동이 필요하다.

Q는 질(quality)이다.
언제나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옛날 사람들은 언제나 현재에 대해서 질과 재능이 부족하다며 불평한다. 이는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는 과거에 관해서는 언제나 나빴던 점이 아니라 좋았던 점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냥 편안히 앉아서 현재를 즐겨라.

R은 히바우두, 호나우디뉴, 호나우두, 로베르토 카를로스(Rivaldo, Ronaldinho, Ronaldo, Roberto Carlos).
브라질이 월드컵을 치르면서 입에 오르내렸던 이름들이다. 그러나 4R이 제 기량을 보일 수 있도록 도운 사심 없이 뛴 G(길베르토 실바)와 K(클레베르손)의 성실함도 기억하라.

S는 전회 챔피언을 꺾고 아프리카 팀으로는 두 번째로 8강에 진출한 세네갈.
큰 열정을 가진 작은 나라. 그리고 스콜라리. 브라질 등지에서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사과해야 한다. 그는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여전히 멋지고 즐거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T는 (욘 달) 토마손.
그는 네 골을 성공시켜 덴마크가 힘든 조별 무대를 통과할 수 있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제라도) 토라도는 멕시코 미드필더의 핵심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이번 월드컵에서 1골을 넣었다.

U는 미국(United States).
포르투갈을 누르고 독일에게도 거의 승리할 뻔 했다. 앨런 로센버그가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을 때 모든 사람이 그를 비웃었다. 이제 이 말은 그저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먼 길이다.

V는 비에리(Vieri).
그는 4골(그리고 모호하게 인정받지 못한 2골)을 넣은 선수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 전 막판에 저지른 대실수로 기억될 것인가? 그가 내년 시즌에 호나우두와 인터 밀란에서 한 팀에서 뛰며 최강의 공격진을 이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W는 빌모츠(Wilmots).
다시 한 번 벨기에를 짊어지고 2회전에 올라간 노회한 전사. 심판 외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파울이 적발되지만 않았다면 브라질을 탈락시킬 수도 있었던 골을 넣으며 최후의 기적을 일궈냈다.

X는 미지수(X-factor).
미지수라는 마력과 예측 불가능성이 축구를 재미있게 만든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보통 선수를 슈퍼스타로, 혹은 그 반대로 바꿔놓을 수 있는 요소다. 그리고 터키와 한국이 준결승까지 치고 올라가고 아르헨티나와 프랑스가 논란 속에서 집으로 돌아간 이유이며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Y는 유상철(Yoo Sang Chul)이다.
그는 준결승에서 발락을 마크하며 경기 흐름에서 완전히 소외시켰다. 그러나 독일이 결승골을 넣는 데에는 몇 초면 충분했다. 우리에게 승리와 패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Z는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이번 대회에서 불행한 모습을 보였다. 좋다. 그는 이미 챔피언스리그, 유럽선수권대회, 월드컵 등 여러 번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단은 몸 상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을 자책하며 여전히 마음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Gabriele Marcotti (CNNSI)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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