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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회와 물항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해「로마」에 갔을때 느낀 일이다. 「로마」의 하늘은 한국의 그것처럼 청명하고 아침햇살이 신선하기만한데, 눈에 띄는 거리의 풍경은 낡아빠진 4층, 5층짜리 건물만이 줄을 잇고…어디 좀 산듯하게 「페인트」칠한 집이 없나하고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 도리가 없었다. 집마다 창살문짝은 칠이 부슬부슬 떨어져 나가고, 석회석재의 벽은 구멍이 숭숭뚫려 비바람에 씻겨내린 먼지로 먹물같은 때기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2천년전 고대 「로마」시정청이던 우중충한 건물안에 현 「로마」시장실과 기록보관소가 자리잡고있는데 그중 한방을 들여다보니 으리으리한 서가 및 고색창연한 서화장식 밑에서 일하는 서사들의 표정은 긍지에 차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집 아래총 고대신전의 유적이 보이는 회랑에 내려서니 「네로」시대에 소방용수나 담았었을지 모르는 사람키보다 큰 물항아리 서너개가 먼지를 뒤집어쓴채 「그로테스크」하게 버티고 서있는데 내눈에 괴물항아리 같이 보이는 이 단지가 이들「로마」인들에게는 포도미주 듬뿍 담긴 야광배처럼 느껴지는 성싶었다. 그밖의 모든 「로마」의 풍물을 보고 현대「로마」인들은 고대「로마」인들을 잊지않고 있고 고대「로마」인은 오늘날 그들 후손들의 생활규범에 큰 영향을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나의 동문이며 「뉴요크」 대학대학원장인 이광수교수가 일시 귀국했을때 덕수궁 담장이다 옛 모습으로 복원된 것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하던 생각이 난다.
덕수궁담장 복원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횟가루 칠이 아직 너무 흰것이야 세월이 흐르면 우리의 감상을 충족시킬만큼 때가 묻으리라.
지난 4월27일 나의 조부님과 선친의 문화구국의 일자리였던 광문회건물이 사화각계의 소소도 헛되이 망국에 의해 헐렸다. 한말이래 십여년간 온 겨레의 선각자들께서 기울어진 이나라의 고문화를 온존하고 세계의 신지식을 민중에게 계몽뭉시키는등 장한 일들을 하시던 건물이다. 나의 입장으로서는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수 없었으며 차마 그 임종에는 참석못하였을 망정 지난7일 이미 허물어진 그자리에서 사라진 건물의 시신과 영혼을 대신하여 기왓장 하나를 주워 혼백보에 싸서 문상, 회장객 한분없이 가족장의 예우로써 선친 육당 기념비곁에 안장시켜드릴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이틀후 삼우제마저 끝내고서 집에 돌아온 저녁, 작년에 보았던 「로마」의 불항아리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태고부터 있어오던 석회석을 쪼아대서 포도미주 담가서 무슨 잔치 지냈는지 그내력을 묻지 마소. 놔둔채로 있는 것을-
원로원의 웃어른야 더도 보지 못했으니 사슬매인 노예들과 같이마셔 즐겼겠네. 술기꺼져 사람가고 네일신만 남았고나.
물항아리 2천년을 앞으로도 몇천년을, 겨우 환갑 정명의 너 땅 한평도 차지못해 넋이라도 길이길이 평안하게 쉬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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